[한경과 맛있는 만남] 오영호 KOTRA 사장 "목표 정해지면 전력질주…'오사인 볼트'로 불렸죠"

입력 2013-03-22 17:25   수정 2013-03-22 22:56

싸움 이기려 권투배운 악바리…"이거다" 싶으면 무섭게 집중
첫사랑과 결혼하려 고시 선택…약혼식날 2차 합격 통지 받아
경주방폐장 유치 결정 땐…늘 사표 갖고 다니며 일해…"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 명심




오영호 KOTRA 사장이 봄기운을 받아 달콤해진 금정산성 막걸리를 한 잔 걸치며 꺼낸 첫 이야기는 뜻밖에도 소싯적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그에게 태권도를 잘하는지 묻자 돌아온 답이다.

“저는 사실 유도 유단자입니다. 태권도는 한 적이 없어요. 태권도 하는 사람한테 얻어터진 적은 있어도….” 그러고 보니 작지만 단단한 체구가 유도의 업어치기를 하기에 더 알맞아 보였다. 오 사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친을 따라 유도장에 갔다고 했다. 1년여 유도를 하면서 초단을 땄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 태권도 유단자에게 맞았다. 아무래도 싸움에는 태권도가 유도보다 더 유리한 것일까. ‘복수’를 꿈꾸던 그가 배운 것은 합기도. 한 달 정도 배우다 ‘이것도 아니다’ 싶어 권투 도장을 찾았다. “석 달간 권투를 배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넉 달 동안 신문 배달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린 복수전은 상대방의 코피로 막을 내렸죠.” 목표가 생기면 무섭게 집중하는 오 사장의 캐릭터는 어릴 적에도 그대로였다.

○첫사랑과 결혼한 행운아

‘한경과 맛있는 만남’을 위해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정식집 명선헌에서 오 사장을 만났다. ‘김치 명인’ 최인순 대표가 차려놓은 상에는 홍어며 전이며 나물이며 맛깔스러운 남도 음식이 가득하다. 대표 메뉴인 ‘보김치’(배추 잎으로 속을 싼 김치)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도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이제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한창 바쁜 KOTRA 경영 이야기는 천천히 들어도 충분했다. 흥미진진한 싸움 이야기를 들으니 첫사랑이라고 하는 부인과의 결혼 스토리도 궁금해졌다. 오 사장은 아직 그 시절 기억이 새록새록한지 막걸리 한 잔을 더 들이켜고 주위 잔도 채워주는 인심을 베푼다. 이 정도면 첫사랑 이야기를 꺼낼 멍석은 깔렸다.

오 사장의 학창시절은 ‘서울’과 인연이 깊다. 서울중 서울고를 나와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들어갔다. 서울대 공대가 공릉동에 있던 그 시절 대학 2학년 때인 1973년 미팅에서 만난 한국외국어대 1학년 학생이 바로 지금의 부인이다. 1980년 결혼하기까지 7년을 사귀었다. 1976년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전방부대 군 생활을 마치고 행정고시를 준비한 것도 첫사랑과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장인어른은 공대를 나온 분이셨습니다. 장모님은 공대 출신 남자에게 시집가면 몸이 약한 딸이 기름에 전 옷을 빨아야 한다며 저를 탐탁지 않게 보시는 것 같았죠. 그래서 고시에 꼭 합격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약혼식날 2차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오 사장이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시절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막은 사람도 부인이었다. “정치를 하면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이혼 서류를 가져와서 도장만 찍으라고 해서 포기했습니다. 집사람은 절제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제 부친이 돌아가실 때도 집사람 얘기를 잘 들으라고 하셨죠.”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실력이 가장 큰 ‘빽’

1980년 5월 상공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오 사장은 미국 상무관을 세 번이나 했다. 첫 상무관 파견은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관련이 있다. 행시 23회 동기인 둘은 1984년 해외 유학을 가기 위해 토플로 경쟁을 했다. 점수는 동점. 한 번 더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때 부친이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어서 외국에 나가 있을 수 없었죠. 부친은 결국 그해 12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유학을 가지 않았던 이듬해인 1985년 4월 미국이 한국 컬러TV에 반덤핑 판정을 내리자 오 사장은 미국 워싱턴 상무관(사무관)으로 파견된다. 반덤핑 관세율을 내리는 게 주된 임무였다. “그때 삼성전자나 LG전자가 60% 정도 되는 세율을 맞았다면 지금처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니가 지금처럼 굴욕을 당하지도 않았겠죠.”

두 번째 상무관은 한국의 자동차시장 개방 협상 때문이었다. 1993년 꿈에 그리던 미국 유학길(버지니아주립대)에 오른 오 사장은 1995년 4월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한 채 호출됐다. “당시 차관이 협상을 끝내면 다시 박사과정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새로운 차관이 와서 공수표가 됐죠. 제가 ‘빽’이 좋아서 상무관을 많이 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전혀 아니에요. 협상 경험이 많아서 파견된 거죠.”

2004년 10월 산업자원부 차관보가 되기 직전 상무관을 한번 더 한 이야기까지 끝나자 명선헌 요리의 백미인 보김치가 나왔다. 국물을 먼저 맛보고 손으로 죽죽 찢어놓은 김치를 먹어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였다. 막걸리 안주로는 김치만한 게 없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막걸리잔이 또 한 순배 돌았다.

얼굴이 김칫국물처럼 약간 달아오른 오 사장은 1999년 총리실 외교안보심의관으로 6·25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피란민 학살 사건 진상을 밝히고 2005년 산자부 자원정책실장을 맡아 경주 방폐장 처분시설을 유치한 이야기를 꺼냈다. “노근리 사건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외교부도 국방부도 맡기를 꺼려서 결국 총리실로 떨어졌습니다. 사건의 실체는 인정받았지만 누구의 명령인지는 밝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었죠.” “경주 방폐장 유치는 차관보에서 실장으로 직위를 낮추고 뛰어든 일이었어요. 잘못되면 언제라도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항상 사표를 갖고 다녔습니다.”

오 사장은 2008년 2월 1차관을 끝으로 산자부를 떠난다. 30년 공직을 끝낸 다음날을 그는 생생히 기억했다. “전날 술을 좀 마셨지만 ‘출근해야지’라는 생각에 아침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그렇게 멍하니 있으니 ‘아 어제 그만뒀지’라고 깨닫게 되더라고요.”


"청년 해외취업·중기 수출지원에 최선 다할 것"

마음을 잡지 못하던 그가 전남 장성 백양사를 찾아가 주지스님에게 받은 말씀이 바로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는 진수무향(眞水無香)이었다. 오 사장은 ‘참된 물’처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다짐했다고 했다.

○‘오사인 볼트’로 불리는 사나이

오 사장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식사로 나온 도다리쑥국의 봄향기가 옛 감상에 젖은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이제 현재로 돌아올 시간이다. 오 사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서강대 교수,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서울 주요 20개국(G20) 비즈니스서밋집행위원장 등을 거쳐 2011년 12월부터 KOTRA 사장을 맡고 있다.

KOTRA는 새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1월 서울 코엑스에서 ‘2013글로벌취업창업대전’을 개최하며 주목을 받았다. 새 정부의 청년 해외 일자리 창출 정책인 ‘K무브(K-MOVE)’와 맥을 같이하는 행사여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개막식에 참석해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이 오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K무브 공약을 어떻게 실행할지 몰랐는데 여기 와 보니 해답이 있다고 좋아하셨어요. 오는 6월 정도면 해외 취업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올 겁니다.”

오 사장은 지원본부를 만드는 등 중소기업 수출 지원을 위해서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 중 수출을 하는 곳은 전체의 2.47%에 불과합니다. 수출 중소기업 가운데 지원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곳이 71%나 되고요. 중소기업 수출 전담 종합상사를 만든다는 얘기도 있는데 우선 KOTRA가 사명감을 갖고 일해야 할 때입니다.”

직원들은 오 사장을 ‘오사인 볼트’라고 부른다. 100m 달리기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처럼 목표가 정해지면 전력질주를 한다고 해서 붙어진 별명이다. 어느덧 오후 10시30분, 식당 문 닫을 시간을 넘겼다. 마지막으로 오 사장이 어디로 달려가고 싶은지 궁금했다.

“제가 행시에 합격하고 사은회를 하는데 교수님이 저에게 ‘자네 같은 후배가 다시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공대 나와서 행시를 본 게 못마땅했던 거죠. 나중에 은퇴하면 청년들이 처음부터 전공과 직업을 잘 선택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인생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은 KOTRA가 역점을 두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에 제 모든 역량을 쏟아야겠죠.”



오영호 사장의 단골집 명선헌 아삭한 보김치에 남도 밑반찬 일품

오영호 KOTRA 사장이 즐겨 찾는 맛집은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정식집 명선헌이다. 김치 명인으로 유명한 최인순 대표가 광주광역시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서울 지점이다. 유명한 메뉴는 보김치와 산해진미 세트. 산해진미 세트(3만3000원)를 주문하면 보리굴비 또는 간장게장이 계절 음식과 함께 나온다. 밑반찬으로는 삼색 나물, 조림, 낙지볶음, 병어 초무침 등 짜지 않은 남도 음식이 상을 가득 채운다. 접대용인 특 산해진미 세트를 주문하면 신선초 샐러드, 두릅 초무침과 흑산도 홍어회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1인분에 5만5000원.

보리굴비는 전통 방식대로 겉보리에 넣어 숙성시켜 깔끔한 질감이 일품이다. 최 대표가 광주에서 직접 담가서 가져온 보김치도 아삭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 집 김치는 미국 NBC에서 ‘한국 문화식품’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김치 맛만 보고 가는 게 아쉽다면 배추김치 석밖지 알타리김치를 ㎏당 2만원 안팎의 가격에 사갈 수도 있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 1번 출구로 나와 삼성 서초트라팰리스 방향으로 꺾는다. 영동중 맞은 편 원진빌딩 지상 1층~지하 1층에 있다. 지하에는 단체 예약이 가능한 방이 있으며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0시(연중무휴). (02)587-2942

서욱진/김대훈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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