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oo농협 조합장인데…. 우리가 뭘 도둑질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서울 서대문구 농업협동조합중앙회에 아직까지 빗발치고 있는 항의성 문의다. 지난 20일 주요 은행과 방송사의 전산망을 마비시켰던 해킹의 진원지가 농협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면서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느라 중앙회 사람들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중앙회의 한 임원은 “해킹 피해를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이런 오해까지 받으니 너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농협은 토요일인 지난 23일 오후 급히 비상 경영위원회를 소집했다. 오해를 풀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백신을 공급한 안랩(옛 안철수연구소)에 대신 해명을 부탁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보안 전문가의 이야기라면 국민들이 금방 믿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2011년 4월 전산망 전면마비로 홍역을 치렀던 농협은 또다시 신뢰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해는 해킹 경로를 조사해온 방송통신위원회의 브리핑에서 빚어졌다. 방통위는 지난 21일 해킹 당시 농협시스템의 특정 IP 주소가 중국에서 할당됐으며, 이를 통로로 악성코드가 유입됐다고 추정했다. 북한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며 추적이 본격화되는 듯했다. 그런데 방통위는 이를 하루 만에 뒤집었다. 알고 보니 문제의 농협 IP 주소는 농협 내부의 사설 IP 주소였다는 것이다. 문제의 IP 주소(101.106.25.105) 11개 숫자가 중국 컴퓨터와 우연히 일치한 것에 불과했다.
농협에 불똥이 튄 것은 이때부터다. 방통위 브리핑 직후 ‘농협의 사설 IP가 해킹의 주된 경로’라는 식의 기사가 잇따랐다. 농협은 “이번 IP는 농협 내부 PC를 감염시킨 경로일 뿐, 다른 6개 기관의 전산마비까지 유발한 것은 아니었다”며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방통위가 섣불리 특정 IP에 초점을 맞춘 탓에 사실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았다.
방통위 실수의 후유증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악성코드 유입 지역으로 지목받은 중국에는 ‘외교적 결례’를 한 셈이 됐다.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앞으로 100% 확실한 것만 발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보기술(IT) 선진국이라는 한국의 체면은 이미 구긴 뒤였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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