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인하대 교수·경제학 Dae-Hwan.Kim@inha.ac.kr
현 정권이 약속한 ‘증세 없는 복지’는 매우 솔깃한 말이다. 세금을 더 내지 않고도 복지가 맞춤형으로 이뤄진다는데 누군들 솔깃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나도 좋은 나머지 꿈인지 생시인지 스스로를 꼬집어보게 된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현재로서는 꿈임이 분명하다. 만약 이 꿈이 현실화된다면 누구의 표현대로 다른 것은 ‘깽판을 치더라도’ 박근혜 정부는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평가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함께 꾸더라도 실현될 수 없는 꿈도 있는 법인데, 바로 이 ‘증세 없는 복지’가 그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현 정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산 절감, 세출구조 조정, 조세감면 감축,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증세를 피하면서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각각은 그 자체로서는 정책목표가 될 수 있을지라도 ‘증세 없는 복지’의 정책수단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충돌하기도 한다.
대선 과정에서 제시된 추가 소요재원 135조원은 연평균 27조원,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그 자체로도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지만 매우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이 이 방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한 국책 연구기관의 추계에 따르면 실제로는 매년 GDP의 6%에 달하는 추가재원이 필요한데,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세수가 현재보다 적어도 10% 이상 증대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증세 없이 해결한다는 것은 무리며,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재원충당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을 공산이다. 설사 제대로 이뤄진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증세가 이뤄지는 셈이 된다. 이마저도 장기적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복지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
어떻게 하더라도 복지재원의 충당을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한 현실을 감안할 때 우선 ‘증세 없는 복지’의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좀 더 가혹하게 이야기한다면, 이 꿈만큼은 현재로서는 정부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꾸더라도 이룰 수 없는 꿈임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매력적이지만 잘못된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할 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복지확충과 증세를 긴밀히 연관시켜 균형을 취해 나가는 것이다. 단기적이어서는 별 의미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시기의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만 한다. 복지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며 어떤 정치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적인 과제는 재원충당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지라는 진보적 목표도 재원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상유지에 급급해서는 복지를 둘러싼 사회갈등만 고조될 뿐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 진보를 위한 현실적 방안은 결국 근본적인 세제개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조세정의에 합당한 세제개혁이 이뤄질 경우 우리 국민들은 복지를 위해 기꺼이 더 많은 세금부담을 질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의 조사결과가 공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는 비단 더 많은 복지를 위한 더 많은 세금부담 차원만이 아니라 복지와 증세 사이의 동태적인 균형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의 복지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채발행이나 부자증세를 거론하는 것은 근본적인 조세개혁을 회피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복지와 증세 사이의 동태적 균형을 위해서는 조세정의와 함께 복지정의도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근본적인 조세개혁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기간 동안에는 복지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표를 의식해 복지의 이름으로 이뤄진 인기영합적 약속은 국민의 이름으로 유보하고 양해를 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보편적 복지니, 선택적 복지니 하는 논쟁은 복지후발자인 우리로서는 사치스런 논쟁에 불과하다. 보편적 복지를 목표로 나아가는 현실의 과정은 전략적 선택의 연속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환 인하대 교수·경제학 Dae-Hwan.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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