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에 점령당한 샤프

입력 2013-03-24 16:52   수정 2013-03-25 02:56

핵심 공장 생산시설은 애플·훙하이 지배아래
삼성 100억엔 출자로 본사마저 독자결정 불가능




일본 전자회사 샤프의 주력 생산시설 중 하나인 일본 미에현의 가메야마 제1공장. 인근의 제2공장과 연결되는 1층 통로의 사무실엔 미국 애플 직원 수십 명이 상주한다. 공장의 주요 데이터를 모아 놓은 곳으로 샤프 직원은 출입할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샤프의 생산시설 및 본사 곳곳이 정작 샤프 직원들은 드나들 수 없는 열강의 ‘조차지(租借地)’가 되고 있다”고 24일 보도했다. 경영난에 빠진 샤프가 애플 삼성전자 등 세계 주요 대기업의 자금을 끌어들인 대가로 생산시설 및 본사의 지분을 잇따라 양도한 탓에 독자적인 경영을 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메야마 제1공장은 액정TV 판매가 부진에 빠지기 시작한 2011년부터 실질적으로 애플 전용공장이 됐다. 아이폰용 패널을 공급하기로 약속하고 1000억엔의 설비투자자금 중 700억엔을 애플에서 받아냈기 때문이다. 애플 덕에 한때 잘나갔던 가메야마 공장은 요즘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등 고전 중이다. 새로 출시된 아이폰5의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 애플의 주문량이 줄어든 탓이다. 하지만 샤프는 속수무책이다. 애플마저 떠나면 아예 공장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약점을 잡은 애플은 계속 가메야마 공장을 통째로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사카에 있는 대형 패널 생산시설인 샤프의 사카이공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은 2010년 상반기 가동에 들어간 세계 최초, 최대의 10세대 라인이다. 주변 인프라 정비를 포함해 약 10조원의 돈이 들어간 공장이지만 이제 주인은 샤프가 아니다. 시장 침체로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작년 봄 대만의 훙하이그룹으로부터 660억엔을 수혈받는 대가로 공장 지분 50%를 넘겼다.

위기에 몰린 샤프는 최근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자에까지 손을 벌렸다. 지분의 3%를 100억엔에 팔기로 했다. 가메야마공장에서 32인치짜리 패널을, 사카이공장에서 60인치짜리 대형 패널을 공급해주는 조건이다. 당초 돈을 대기로 했던 훙하이그룹은 주가 하락을 이유로 출자를 사실상 거부했다. 100억엔을 투입하기로 약속했던 미국 퀄컴도 나머지 50억엔의 출자를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애플 삼성 훙하이 퀄컴 등 네 곳의 주요 출자사 가운데 한 곳만 빠져나가도 샤프는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며 “샤프의 기술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샤프 제국’은 황무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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