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믿을 수 없는 경찰의 '입'

입력 2013-03-26 17:17   수정 2013-03-26 23:25

김우섭 지식사회부 기자 duter@hankyung.com


“성(性) 접대 동영상 분석 결과에 대해 보고 받은 바 없습니다.”(이명교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건설업자 윤모씨가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성 접대 동영상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가 나온 지난 25일 밤. 서울 미근동 경찰청 기자실에선 일대 소란이 일었다. 다른 사정 기관과 청와대 등을 통해 일부 기자들이 동영상 감정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도, 이번 사건 수사팀의 유일한 언론 창구인 이 과장은 끝내 부인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거듭된 사실 확인에도 ‘부인’과 ‘모르쇠’로 일관하던 이 과장의 태도는 30분 만에 바뀌었다. ‘동영상 분석 결과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한 방송의 보도가 나온 뒤였다. 그는 그제서야 “분석 결과는 지난 22일과 오늘 이틀에 걸쳐 받았고, 분석 결과를 검토 중이었다”고 마지못해 시인을 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성 접대 의혹 수사과정에서 경찰의 거짓 설명은 이날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동영상 분석 결과를 통보받은 지난 22일 이후 기자들은 수사팀이 열어둔 제한적인 취재길목인 ‘공식 기자 질의응답’을 통해 여섯 차례나 “분석 결과를 확보했느냐”고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수사팀장인 그는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다. 앞서 지난 20일에도 기자들이 “성 접대 피해자로부터 동영상을 확보했느냐”고 물었지만 “동영상은 없다. 나도 정말 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 이미 수사팀은 문제의 동영상을 확보하고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거짓 설명으로 논란이 커지자 김정석 경찰청 차장이 26일 기자실을 방문, “대응이 적절치 못한 것은 인정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태 무마에 나섰다. 고위층 인사가 연루된 이번 사건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경찰은 보안을 이유로 거짓말을 쉽게 하고 있다. 검찰 등 일각에서 경찰이 피의 사실을 일부 언론에 흘리며 수사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경찰의 이 같은 부적절한 처신 탓이다.

경찰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성 접대 리스트’를 유포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경찰 스스로 불신받을 일은 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우섭 지식사회부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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