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삼성 협력사에서 점심 굶은 사연

입력 2013-03-27 16:35   수정 2013-03-27 21:46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같이 가시죠. 안성까지 오셨는데, 근처에 잉어찜 잘하는 곳이 있습니다.”

새벽같이 출발하느라 출출했지만 “아뇨”라며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삼성판 강소기업’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경기도 안성에 있는 신흥정밀에서 생긴 일이다. TV 프레임 등을 만드는 이 회사는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협력회사다. 1968년 설립 때부터 삼성과 거래하며 성장해 중국 인도 루마니아 등 해외를 포함해 16개 법인, 25개 사업장을 갖고 있다.

회사를 소개해준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직원과 함께 아침 일찍 도착, 이종찬 부사장을 만나 브리핑을 받았다. 정규형 회장의 차남인 정우석 부사장으로부터 삼성전자 미래경영자과정(오너 2, 3세 자녀를 위해 만든 10개월 경영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얘기도 들었다. 공장을 둘러보고 세 시간여에 걸친 취재를 마무리하고 나니 정오가 조금 넘었다. 정 부사장이 “예약까지 해놓았다”며 같이 식사할 것을 권했으나 동행한 삼성전자 직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이어서 응할 수 없었다.

삼성전자는 ‘비즈니스 가이드라인’을 정해 임직원과 협력사 간 만남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제대로 된 부품을 받으려면 유착이나 비리 등 부정이 있어선 안된다는 차원이다. 비리 등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임직원을 징계하고, 협력사와는 거래를 끊는다.

이 가이드라인은 ①어떤 뇌물도 받지 않는다 ②과도한 식사 골프 접대 등 향응을 받지 않는다 ③부당한 청탁을 하지 않는다 등 9개항으로 이뤄졌다. 금지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해 놓았다. 일식당, 한정식집, 호텔 등 고급식당 등에서 밥 얻어먹는 것을 ‘과도한 식사’로 규정했다. 업무상 거래업체와 식사가 필요한 때엔 비용은 삼성전자에서 부담하라고 적시했다. 거래업체 직원이 지인일 경우에도, 공적 관계가 우선이므로 술자리 등 모임을 피하라는 게 가이드라인 내용이다. 이는 삼성 전 계열사에 적용되고 있다. 추석 설날 전 등 수시로 임직원과 협력사에 재고지된다.

잉어찜은 ‘과도한 식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삼성 직원은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일은 아예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저 때문에 식사를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와 오후 1시30분께 허겁지겁 칼국수로 끼니를 때웠다. 글로벌 기업 삼성을 들여다볼수록 흥미로운 일들을 발견하게 된다.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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