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교수의 경제학 톡] 시장퇴출의 자유

입력 2013-03-27 16:58   수정 2013-03-28 03:21

(30) 시장퇴출의 자유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sejinmin@dongguk.edu >



경기 회복이 더디다 보니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퇴출 위기에 놓인 기업들에 대한 언론 보도를 종종 접하게 된다. 사실 자유로운 시장 퇴출은 자유로운 시장 진입과 함께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인프라 같은 것이다. 시장에 기회가 있을 때 새로운 기업들이 신속하게 진입하고, 그런 기회가 소진됐을 때는 경쟁력이 뒤처지는 기업들부터 빨리 시장에서 물러날 수 있어야 한정된 자원이 가장 가치 있는 곳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에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은 경제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시장이라 간주되는 ‘경쟁적 시장’의 중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 시장 퇴출은 자유라 부르기에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고통을 차치하고라도 시장 퇴출은 ‘경쟁적 시장’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순조롭고 신속하게 진행되기 어렵다. 시장 퇴출 과정이 복잡해지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대부분의 기업이 빚을 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는 부채와 자본이 있는데, 부채는 돈이나 물건을 빌려 진 빚이고, 자본은 주인(들)이 투자한 돈이나 물건이다. 부채와 자본의 중요한 차이점은, 주인은 자본을 포기하더라도 채무자로서 채권자에게 진 부채는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채무자가 약속한 원리금을 채권자에게 제때 주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이면서 은행 등의 금융회사(들)가 채권자일 때,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라면 부도가 나기 전에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 있다. 주로 채권자가 주인으로 바뀌고(출자전환)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미 부도가 난 경우 법원이 기업의 재산을 정리하는 청산 과정에서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법정관리’를 할 수도 있다. 이때는 법원이 관리인을 파견하면서 주로 부채의 일부를 탕감해준다.

이렇게 회생 기회가 주어지는 기업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회생 절차가 제한된, 특히 작은 규모 기업의 경영인인 경우 수표가 부도나면 마치 위조수표를 발행한 것처럼 ‘부정수표방지법’에 걸려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수표가 아니라도 갚을 수 없는 상황인데 갚겠다는 약속으로 어음을 발행했다 부도나면 ‘사기죄’에 해당돼 역시 감옥에 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물론 이런 처벌은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있는데도 부도를 내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만약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면 애초에 기업이 빚을 얻어 쓰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신용(빚)이 없다면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채권자를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과도한 처벌은 진즉에 접어야 하는 사업을 질질 끌게 하여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시장에의 자유로운 진입을 방해하는 ‘시장 진입장벽’도 문제지만, 시장 퇴출을 지연하는 장애물들도 중요한 문제다. 중소기업이 더욱 어려운 지금 채권자를 보호하면서도 억울한 죄인을 줄이는 방안은 없을지, 정부가 더 고민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sejinmin@dongguk.ed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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