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서만 머물 수 없었던 두 망명가…사랑으로 달랜 마음의 허기

입력 2013-03-29 16:48   수정 2013-03-29 22:30

스토리&스토리 - 예술가의 사랑 (44) 레마르크



레마르크(1898~1970)와 마를레네 디트리히(1901~1992). 두 사람에게는 참 공통점이 많다. 조국인 독일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세계 각지를 유랑한 점, 한 남자와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연인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한 점,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려 주머니가 두둑하다는 점이다.

레마르크는 31세(1929년)에 발표한 처녀작인 반전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1932년 나치로부터 반전 작가로 낙인찍혀 스위스로 망명했고 이듬해에는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독일에 남아있던 여동생은 2차대전 당시 반동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살됐다. 이후 그는 프랑스 등지로 옮긴 끝에 1939년 미국에 정착한다.

디트리히도 1930년 요제프 폰 스턴버그 감독의 ‘푸른 천사’에 출연하면서 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할리우드에 진출, 육체파 팜파탈의 이미지로 남성 팬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덕분에 그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개런티를 받는 여배우가 됐다. 그의 성공을 눈여겨 본 나치가 독일에 들어와 전쟁 홍보영화를 만들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한 채 미군 편에 서서 위문공연을 펼쳤다. 그는 반전 가요인 ‘릴리 마를레네’를 부르며 세계 평화를 호소했다. 이런 ‘불순한’ 활동으로 인해 그 역시 매국노로 낙인찍혔고 타향을 떠돌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다행히 돈 걱정에서 자유로웠던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럭셔리한 망명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공복감은 채우기 어려웠다. 레마르크와 디트리히의 애정편력은 그에 대한 보상심리의 발로였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937년 9월 베니스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리도 섬에서 였다.

디트리히는 마침 스턴버그 감독과 점심식사 중이었다. 디트리히를 알아 본 레마르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상대편을 기다렸다는 듯 친밀한 눈빛을 교환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감독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줬다. 대화는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됐다. 동병상련의 감정에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더해졌다.

안타깝게도 사랑은 더 깊은 단계로 진전되지 못했다. 당시 레마르크는 성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트리히는 레마르크의 매력에 푹빠진 상태였다. 둘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디트리히는 한 사람을 진득하게 사랑할 수 없는 여자였다. 그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랑한 양성애자였다. 그의 연인 리스트는 노트 한 권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는 사랑에 관한 한 극단적 이기주의자였다. 게리 쿠퍼와 영화‘모로코’에서 공연할 때는 그에게 한창 열애 중인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유혹해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였다.

레마르크도 애정편력이 대단했지만 그는 적어도 1 대 1 원칙을 준수했던 순정파였다. 그런 그에게 디트리히의 외도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다.

그는 상처받기 쉬운 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디트리히를 떠날 수 없었다. 디트리히를 미워하면서도 그는 전화통에 목을 맸다. 디트리히는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라며 나직이 속삭였다. 두 사람은 수시로 편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레마르크는 자신을 가상의 알프레드라는 인물로 설정, 디트리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친밀한 관계는 결국 3년 만에 막을 내렸고 디트리히는 또 다른 연인을 찾아 거침없는 항해를 계속했다. 레마르크도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에게서 마음의 헛헛증을 해결했다.

두 사람은 연인관계를 청산한 이후에도 느슨하나마 관계를 지속했다. 레마르크는 늘 디트리히의 양송이 스프가 그리웠고 디트리히는 레마르크의 비단결처럼 예민한 감성이 아쉬웠다. 그는 어떤 그랑 크뤼 와인도 맛만 보면 알아맞히는 미각의 지존이었다.

그러나 레마르크에게 있어 디트리히와의 사랑은 끝난 게 아니었다. 레마르크는 1946년 발표한 반전소설 개선문에서 자신을 나치에 쫓겨 프랑스에 밀입국한 외과의사로, 디트리히를 정부에 살해되는 여배우 조앙 마두로 설정, 자신의 품안에서 최후를 맞는 존재로 묘사했다.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디트리히의 외동딸인 마리아 리바가 어머니의 일대기인 ‘마를레네 디트리히’(1992) 속에서 두 사람이 교환한 편지의 내용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레마르크의 부인이 기증한 자료들을 토대로 이뤄진 2001년의 레마르크 특별전(뉴욕대 페이블도서관)도 두 사람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시에서 유난히 관객들의 눈길을 끈 것은 레마르크의 저작도, 수많은 명사와 교환한 편지도 아니었다. 바로 한 뭉치의 여권과 여행허가증이었다. 그것은 평생 타지를 떠돌며 망명객으로 살았던 20세기 최고 문필가의 정신적 이정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사랑으로 치유하려 몸부림쳤던 한 작가의 처절한 자화상을 본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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