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토지는 생산 증가에 인색
가난·범죄 등 혼란 맞을 것…정부 복지정책도 효과 못봐
농업·의술의 발전 등 시장기능 간과했다는 비판도
18세기 말 유럽은 감격에 휩싸였다. 산업혁명에 따른 생산 능력 확대 등의 영향으로 인류는 전쟁과 범죄도 없고 빈곤과 기아도 사라진 행복과 번영을 누릴 것이란 희망이 확산됐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한낱 유토피아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인물이 있었다. 영국 출신의 정치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였다. 부유한 농장주 아들로 태어난 그는 숙명적인 인구과잉으로 인류의 미래는 빈곤, 기아, 범죄 등 피할 수 없는 참혹한 사회악으로 혼란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성직자의 길을 걷다 정치경제학에 입문했던 맬서스가 주목한 것은 인구원리가 미래의 사회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였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 당시 풍미했던 인구 증가 예찬론 때문이다. 인구 감소야말로 국가가 처한 최대의 재앙이기에 경제 성장을 위해선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노후 대비를 위해서도 자녀를 많이 두는 게 좋다고 믿었다.
맬서스는 그 같은 인구예찬론을 배격하기 위해 인구경제학을 썼다. 내용의 핵심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생산 증가에 인색한 토지 때문에 기아와 가난은 숙명적이라고 것이다.
인구는 25년마다 기하급수로 증가한다는 게 맬서스의 인식이다. 강한 성적 욕구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인구가 2억명이라면 25년 뒤에는 4억명, 50년 뒤에는 8억명, 75년 뒤엔 16억명으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래고 100년 뒤엔 32억명이 된다. 그렇게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할 식량은 유감스럽게도 25년마다 산술급수로 증가한다고 한다. 현재 쌀 생산량이 100만가마니라고 하면 25년 뒤에는 200만, 50년 뒤에는 300만, 75년 뒤엔 400만가마니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식량 생산의 증가 속도가 인구 증가속도에 비해 크게 느리다면 인구 증가는 결국 기아, 빈곤, 범죄 등 잔혹한 방법을 통해 억제될 수밖에 없다는 게 맬서스의 설명이다. 성적 욕구를 누르고 결혼을 미룬다면 인구가 줄어들 수 있지만 이런 방법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의 결론은 인류 삶의 수준은 생존하기도 빠듯하고 생활이 나아지기라도 하면 식구 수가 늘어나 삶이 어려워져 결국 빈곤은 숙명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빈민구제를 위해 복지정책을 실시하면 결혼과 임신이 촉진돼 인구가 증가되고 그 결과는 빈곤층의 확대뿐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싼 값의 식량 수입으로 생활수준이 나아질 수 있으나 이는 인구 증대를 초래해 결국엔 기아와 빈곤을 늘린다는 이유에서 곡물 수입의 자유화도 반대했다.
맬서스는 간결한 문체와 뚜렷한 이미지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을 반박했지만 그의 논리는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의 사상에는 인간은 영양섭취와 성적 만족을 위해 산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먹을 게 많아지면 출산도 늘어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수많은 통계연구가 보여주듯이 경제적으로 번영한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하다. 경제가 성장하면 저절로 인구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다. 생활 수준이 낮으면 노후대책의 필요성에서 자녀를 많이 갖게 되지만 소득이 높을수록 그런 필요성이 감소한다. 생활수준 향상으로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피임방법에 대한 이해력도 향상된다. 미용과 아름다운 외모의 추구, 안락함과 편안함에 대한 선호, 사회진출 확대 등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것도 출산율 감소 요인이다.
주목할 것은 인간은 짐승과 달리 영양 섭취와 성적 만족만을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답게’ 살기를 원한다. 성적 만족에 맹목적으로 굴복하는 게 아니라 성적 만족도 저울질 하는 게 인간이다.
과거에는 유아 사망에 대비해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오늘날에는 의술의 발달, 영양, 위생의 개선으로 유아사망률이 크게 낮아졌기에 그런 대비가 필요없다는 이유를 들어 출산율 하락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를 감안한다면 인구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맬서스는 농업기술의 발전을 무시한 측면도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농업생산력이 19세기 중반 이래 크게 증가했다는 사학자들의 증언은 수없이 많다. 줄리언 사이몬은 1920년대 이후 미국의 농업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품종개량, 농기구 개량, 비료, 트랙터 등 기술개발 덕분이었다. 식량 생산이 인구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인구의 증가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의술과 농업기술의 발전은 재산권과 가격구조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산물이었다. 맬서스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인구문제 해결 메커니즘으로서의 시장경제 기능이었다. 기업가적 자유시장은 경제 성장을 통해 빈곤문제는 물론 인구문제까지도 스스로 해결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맬서스의 사상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는 인구 증가로 인한 환경 파괴 등 인구 증가의 경제적 원인과 결과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인구경제학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인구 폭발의 공포심에서 가족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성장의 한계를 옹호한 간섭주의자로 분류된다.
맬서스 사상의 힘 - 한국 산아제한정책 이론적 토대
마르크스가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경제학이라고 비판한 맬서스의 사상이 정치사와 지성사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19세기 초 영국은 빈곤을 해소하고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부양하는 자녀 수를 기준으로 한 생활보조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맬서스는 그런 정책을 폐지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저렴한 식량 수입은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인구 증대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이유로 농산물 보호주의 편에 서서 비교우위론으로 자유무역을 주창한 리카도와 세기적 대결을 벌였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 미친 맬서스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다윈은 갈등과 투쟁, 호전성, 공격성을 의미하는 ‘생존경쟁’ 개념을 맬서스에게서 전용했다고 말한다. 다윈은 영양섭취와 성적 욕구가 인간행동을 결정한다는 맬서스의 전제가 생태계의 동식물에도 타당하다고 여겼다. 다윈을 경유해 맬서스의 생존투쟁을 이어받은 패러다임이 자본주의를 먹고 먹히는 정글과 같다고 비판한 사회다위니즘이다.
인구폭발에 대한 맬서스의 예언은 빗나갔고 그의 사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러나 그를 불러들인 장본인은 1970년대 등장한 맬서스의 후예들로 구성된 ‘로마클럽’이다. 그들은 인구를 억제하고 성장의 고삐를 잡아당기지 않으면 자원 고갈, 빈곤과 기아로 인류는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를 우려하는 환경주의자들도 맬서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공업화를 지속할 경우 대기가 가열돼 생물이 재로 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맬서스 사상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은 사례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중국의 엄격한 ‘한 자녀 정책’이다. 이 정책은 여자 아이의 낙태 증가로 인한 남녀 성 불균형,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 고령화의 문제를 야기하는 등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중국의 인구증가율을 연 1%로 끌어내렸다.
한국도 맬서스 인구론의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는 세 자녀 운동, 1970~1980년대 두 자녀 갖기 운동 등으로 인구 억제정책을 실시했다.
비판도 있다. 먼저 환경주의자들이 간과한 것은 자원이 희소하면 가격 구조의 변화를 통해 자원의 절약, 대체자원의 발견으로 희소성을 해결하는 시장질서의 탁월한 능력이다.
또 인구 정책과 관련된 정부 담당자들은 시장경제가 스스로 인구 수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자본주의에서 소득이 증가하면 출산을 장려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시장경제의 기초가 되는 책임원칙이야말로 방만한 출산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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