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의사 재량에 맡긴 '마약' 시술

입력 2013-03-31 17:06   수정 2013-03-31 22:43

정소람 < 지식사회부 기자 ram@hankyung.com >


“카복시 시술에 프로포폴(수면유도제) 투약이 필요한 것은 의료계 정설입니다. 여자 연예인이기에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려 한 것입니다.”

지난 3월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연예인 프로포폴 투약 첫 공판에서 배우 장미인애 씨 변호인은 “시술 가이드라인이 없어 의료 외 목적으로 투약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장씨가 받은 카복시 시술(이산화탄소를 주입해 피하 지방을 분해하는 시술)의 경우 고통이 크기 때문에 프로포폴을 사용해 수면마취를 하는 게 관행이라는 얘기였다. 장씨는 프로포폴을 95차례 상습 투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변호인은 “더마톡스 등 다른 피부·비만 시술도 고통이 따르는 만큼 의사 재량껏 프로포폴을 사용한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의료업계에서는 이와 상반된 주장이 많다. 한 마취전문의는 “카복시 시술은 1~5분이면 끝나 대개 마취 없이 진행하고 피부과 시술은 연고 마취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용시술에 100여회 프로포폴을 반복적으로 투약한 것은 의사가 환자의 심리적 의존을 조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인 프로포폴 공판 다음날인 3월26일 프로포폴 불법 유통·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의사 조모씨도 “다른 시술을 병행한 것처럼 기록해두지만 대부분 프로포폴이 주 목적”이라며 “반복 투여 시 환자는 대개 한 달 안에 중독 상태가 된다”고 진술했다.

2010년 하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이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했지만, 프로포폴 오남용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적용 가능 시술, 빈도, 투약량 등에 대한 세부 규정이나 제한이 따로 없는 탓이다. 마약류관리법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승인을 얻은 적법한 향정신성의약품 취급자가 업무 목적에 따라 프로포폴을 취급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의사가 환자의 시술 고통을 덜 목적으로 프로포폴을 사용했다면 횟수에 상관없이 합법일 수도 있는 셈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프로포폴 관련 사망자 44명을 부검한 결과 오남용으로 인한 경우가 22명에 달했으며 이 중 70%가 의사·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였다고 밝힌 바 있다. 프로포폴이 ‘마약’이라면, 당국은 형사처벌만 할 게 아니라 ‘마약류 취급자’의 재량에 모든 것을 맡겨둔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하지 않을까.

정소람 < 지식사회부 기자 ram@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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