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손으로 만든 그릇

입력 2013-04-02 17:17   수정 2013-04-03 01:26

그릇은 무릇 음식을 돋보이게 해야…맛과 멋은 물론 이야깃거리도 제공

이윤신 <W몰 회장·이윤신의 이도 대표 cho-6880@hanmail.net>



돌아가신 어머니는 내가 대학생 시절에 혼수준비를 시작하셨다. 다른 어머니들같이 그릇을 혼수 1위로 정하시고 아기자기한 꽃무늬 라인의 그릇세트를 준비해주셨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에 결혼했는데 그 그릇은 집들이 때 한 번 사용하고 지금껏 모셔두고 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했고 미술관을 그만두고 바로 그릇을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일요의 김익녕 선생님 백자그릇이 인기였는데, 어머니는 모르셨던 것 같다. 김 선생님은 명실공히 그릇 작가 1호다. 김 선생님의 백자그릇을 준비해주셨으면 애지중지하며 사용했을 텐데.

그릇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돼 많은 것이 만들어졌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릇을 만들 때 원칙은 음식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장식은 음식에 방해가 되고 수납에 문제가 있다. 처음 2년여 동안은 만든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많이 버렸다. 가마문을 열고 실망해 내다 버리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나만의 것을 찾아냈다. 음식이 담기는 부분은 유약을 처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점토가 보이게 하는 기법이었다. 지금도 이도를 대표하는 라인이다.

지금이야 유행처럼 됐지만, 20여년 전에는 작가 그릇은 장식장에 모셔놓고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은 식탁에서 김치와 국을 담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보통 그릇이다.

그릇의 색상을 한 가지로 맞추는 것은 재미가 없다. 격식 있게 모셔야 하는 손님은 다양한 라인으로 준비한다. 여섯 분을 위한 상차림은 앞 접시를 청연, 온유, 윤, 소호, 나울 등 다른 라인으로 하거나 두 가지 라인에 원형과 사각접시로 변화를 준다. 그렇게 식탁을 세팅하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1, 2인상은 밥과 국그릇만 같은 것으로 놓고 찬기는 다른 톤으로 맞춘다. 생선접시를 오발타입이나 사각으로 하고 유약색을 달리하면 흥미를 줄 수 있다. 함께 먹는 음식이 준비되면 튀는 디자인을 골라본다. 색상과 형태가 특별한 것으로 둘 사이에 놓으면 식탁은 작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즐기다 보니 25년 전 청연과 온유 두 가지로 시작된 이도는 열 가지가 넘는 라인으로 매장을 채우고 있다. 손으로 만든 그릇을 쓰는 즐거움은 다양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이야깃거리 그리고 단순한 듯하나 깊이 있는 여유, 그런 것들이 아닌가 싶다.

이윤신 <W몰 회장·이윤신의 이도 대표 cho-68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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