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시기에 총재는 중앙은행에 있어야"
불편한 기색 역력…11일 금리결정 촉각
5일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참석할지 여부였다. 청와대 외곽의 안전가옥인 서별관에서 열리는 이 회의의 정식 명칭은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까지 나서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은 김 총재의 서별관회의 참석을 기준금리 인하로 받아들이는 상황이었다.
김 총재의 참석 여부는 서별관회의가 열리는 점심 무렵까지 오리무중이었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오전 11시30분께는 김 총재의 차가 움직여야했지만 꼼짝 않고 있었다.
낮 12시를 넘긴 시간, 걸어서 한은 본관을 나선 김 총재는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얼굴 빛은 다소 불편해 보였다. 오후 1시10분께 한은 직원들과 함께 들어오면서는 “중요한 시기에 중앙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에 있어야 한다. 한은 일을 해야지 왜 가냐”며 작정한 듯 말을 던졌다.
이날 한국경제신문 보도로 개최 사실이 알려진 서별관회의에 김 총재는 불참을 선택했다. 회의에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만 참석했다. 김 총재는 지난달 24일 열린 새 정부 첫 서별관회의에도 해외출장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는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12조+α’ 규모의 추경예산 편성을 추진하면서 정책공조 차원에서 한은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시점에 열려 관심을 끌었다. 과거에도 한은 총재가 서별관회의에 참석한 후 금리를 변경한 사례가 여럿 있었다. 지난해 7월 김 총재는 서별관회의 참석 이후 기준금리를 기존 연 3.25%에서 연 3.0%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 10월에도 이성태 전 총재는 회의 참석 후 금리를 0.75%포인트 내렸다.
김 총재의 이날 불참을 놓고 시장에서는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단 외부 시선을 의식했다는 게 일차적 분석이다. 금통위 개최를 1주일도 안 남긴 민감한 시점에 서별관회의가 개최되고 김 총재가 참석하기로 돼 있다는 것이 노출된 이상 참석 자체만으로도 시장의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과거 이 전 총재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빈번하게 열린 서별관회의 참석 요청에 대해 “당시에는 비상사태여서 어쩔 수 없었지만 장관들 회의에 한은 총재가 ‘원오브뎀(one of them)’으로 참석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편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중앙은행 총재는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행정부의 일원이 아니라는 게 한은 내부의 정서다.
김 총재의 불참이 금리 동결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은이 기존의 ‘미약하나마 회복 중’이라는 경기 판단을 유지한 채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관측이다. 채권시장은 불참 소식이 전해진 직후 소폭 반등(값 하락)했지만 재차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김 총재도 정부와의 공조를 강조해온 마당에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서별관회의 불참을 통해 청와대와 정부는 한은이 독립적으로 판단했다는 명분을 주고, 이에 대해 한은이 금리인하로 화답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불참을 통해 한은이 독자 판단에 의해 금리를 결정했다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준금리는 내주 나올 경제전망을 기초로 금통위원 간 합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서정환/정종태/김주완 기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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