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양 '커피전쟁'에 네슬레 '비명'

입력 2013-04-08 17:35   수정 2013-04-08 23:07

'경쟁의 축복' 속 토종기업 점유율 92%

브랜드·CEO 교체에도 네슬레, 2년 연속 적자



커피시장의 거함 네슬레가 동서식품과 남양유업 간 자존심을 건 커피전쟁 영향으로 점유율 축소와 적자 지속의 수모를 당하고 있다. 커피믹스 시장은 물론 아성을 구축했던 커피머신 시장에서도 점유율 급락을 면치 못하며 2년 연속 적자에 빠졌다. 남양과 동서는 ‘경쟁의 축복’을 받으며 커피시장의 거두 네슬레를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안일한 거함 네슬레

커피 수입규제가 풀린 1989년 한국에 진출한 네슬레는 커피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병커피가 대세였던 당시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인스턴트 커피시장의 43%를 점유했다. 그러나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게 실수였다. 동서식품이 1987년 ‘맥심’ 브랜드로 커피믹스 시장에 바람을 일으키며 점유율을 80%로 끌어올릴 때까지 네슬레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생산을 시작했다.

네슬레는 이때까지 그나마 안정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했지만 2001년 남양유업이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 동서식품과 남양유업은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의 체감 가격이 최고 40~50% 떨어질 정도로 치열한 할인·판촉 경쟁을 벌이며 소비자들에게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에 비례해 네슬레의 상품은 매장에서 뒤로 밀려나며 점유율이 계속 떨어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네슬레는 동서 남양과 달리 대형마트, 편의점, 슈퍼마켓 등의 유통을 각기 다른 업체가 맡고 있기 때문에 통일된 정책을 펴지 못했다”고 말했다.

○커피머신도 추격 허용

한국네슬레는 2007년 고급 커피머신 ‘네스프레소’에 이어 2011년 저가형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를 내놓았다. 고급과 중·저가시장을 동시에 장악하며 국내 커피머신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절대 아성’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동서식품이 돌체구스토와 가격대가 비슷한 ‘타시모’를 출시, 1년 만에 점유율 30%대(판매 대수 기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한국네슬레는 최근 타시모에 대응하기 위해 커피캡슐 30상자를 사면 돌체구스토 기계를 공짜로 주는 행사까지 벌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면서 극단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며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네슬레 본사가 한국법인에 대해 내린 두 가지 극약처방과 맥을 같이 한다. 10년 장수했던 한국인 CEO 이삼휘 전 사장을 전격 교체한 데 이어 23년 장수 브랜드였던 ‘테이스터스 초이스’도 버렸다. 회사의 수뇌와 대표 상표를 포기하는 ‘심기일전’에도 불구, 아직 가시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네슬레의 한 전직 임원은 “네슬레가 진출한 80여개국 가운데 한국 순위는 밑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로 낮다”며 “커피믹스 비중이 높고 토종업체의 영업력이 강한 독특한 한국의 특성 탓이지만 본사에서는 ‘한국 점유율이 왜 이리 낮냐’며 불만을 내비치곤 한다”고 했다.

한국네슬레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717억원으로 1년 전(3937억원)보다 5.6% 줄었다. 또 영업손실 155억원을 기록, 2011년(264억원)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주력 제품인 커피믹스의 시장점유율(AC닐슨 집계)이 8.9%에서 5.1%로 떨어졌고, 90% 넘게 장악해 온 커피머신 점유율(판매대수 기준)도 60%대로 내려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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