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 4월의 눈꽃, 그리고 혜교

입력 2013-04-10 17:46   수정 2013-05-13 13:34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여주인공으로 4년 만에 드라마서 열연,

복잡한 사랑과 갈등, 섬세한 표현으로 풀어내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 어색해서 오히려 정신이 없던데요.”(웃음)

벌써 데뷔 17년차지만 그간 연기력 호평에 적잖이 목말랐었나 보다. 쑥스럽게 미소 짓는 배우 송혜교(31)의 얼굴에 은근한 뿌듯함이 서려 있다.

지난 3일 종영한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 이하 ‘그 겨울’)의 여주인공 오영 역으로 4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송혜교는 한층 깊어진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은 시각장애인인 여주인공이 뒤늦게 나타난 ‘가짜 오빠’ 오수(조인성)와 전개하는 복잡다단한 사랑과 갈등을 섬세한 표현으로 살려낸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연기력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처음부터 작품에 확신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원작인 일본 드라마가 방송 10년이 가까워 오는 작품인 데다 여기저기서 연출 기법도 많이 따라 해서 처음에는 리메이크하겠다는 노희경 작가의 말에 반신반의했다”는 그는 “그저 작가님과 감독님을 믿고 따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작품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전한 시각장애인 역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같이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화제가 됐던 오영의 메이크업 장면 등을 직접 배우고 익혔지만 시선 처리도, 감정 표현도 무엇 하나 수월한 게 없었다.

그는 “동적인 연기가 제한돼 있어 얼굴과 손 등 신체 일부로만 느낌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며 “감독님이 구사한 극단적인 클로즈업 샷이 미세한 떨림이나 표정 변화를 시청자들이 잘 감지하게 해 줘 살았다 싶다”고 했다. 촬영장에서는 처음으로 지독한 외로움을 겪기도 했다.

“눈을 보지 않고 정지된 시선으로 연기하니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도 늘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어요. 이제는 상대방의 눈을 보며 연기하는 게 더 어색해져 시선 처리를 다시 연습해야 할 정도예요.”

동갑내기 배우 조인성과의 로맨스 장면은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극 초반 오빠인 줄 알면서 사랑하게 되는 순수한 여자의 모습과, 사기를 치려고 만난 여자에게 빠져버리는 남자의 감정선이 묘한 화학작용을 이끌어냈다.

조인성과 연인으로는 처음 호흡을 맞춘 데 대해 그는 “인성 씨 키가 무척 커서 내가 봐도 순정만화 같은 느낌도 나고 영이가 더 사랑스러워 보이더라”라며 “친오빠가 아님을 알고 두 사람이 나누는 산장에서의 키스신은 그간 모아뒀던 감정을 폭발시켰던 순간이라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끝 모를 외로움과 절절한 사랑을 함께 체험한 작품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모든 걸 쏟아부은 듯 지금은 에너지가 바닥이 난 상태라 이제는 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물을 하고 싶어졌어요.”

중학생 시절 교복 모델로 데뷔해 어느덧 배우로 산 날들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더 길어졌다. 가끔 불필요한 루머에 휘말릴 땐 여배우로 사는 게 힘겹다고 느끼지만 큰 산을 넘은 듯한 지금의 성취감은 앞으로의 행보에도 큰 힘이 될 것 같다.

“아픈 날도, 상처받을 날도 무수하겠지만 사랑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 ‘그 겨울’의 영이 모습처럼 그저 묵묵히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글=장서윤 텐아시아 기자 ciel@tenasia.co.kr

사진=이진혁 텐아시아 기자 eleven@tenasia.co.kr



< 한국경제신문·텐아시아 공동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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