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렇게 빠져나간 돈의 상당 부분이 금융권을 떠난다는 데 있다. 골드바 미술품 등 실물을 구입하거나 아예 현금화돼 퇴장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120개 금 전문매장의 골드바 판매액은 지난해 12월 5억5700만원에서 지난 3월에는 21억원으로 치솟았다. 금액 자체는 많지 않지만 추세는 급증이다. 5만원권은 지폐 발행액의 64%에 달하지만 시중 유통량은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반면 5만원권으로 15억원을 담을 수 있는 개인금고 판매량은 1년 전보다 20%나 늘었다. 5만원권 현찰을 금고에 쌓아놓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금융권을 이탈한 뭉칫돈이 금고에 잠기거나 비생산적인 분야로 흘러드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금융권의 대출재원은 고갈되고 이는 기업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이나 경기회복은 더 멀어지게 마련이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등으로 탈출한다는 풍문도 퍼지는 중이다. 물론 지하경제 양성화는 필요하고 탈세 역시 발본색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그것이 ‘돈맥경화’를 불러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기업들은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경제는 7개월째 0% 성장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금융권에 머물고 있는 돈마저 밖으로 쫓아낸다면 이는 결코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시기를 잘 택해야 하고 강약도 필요하다. 도처에 찬바람만 몰아친다면 의도와 달리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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