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다시 한번 한반도 국면 전환의 공을 남쪽으로 돌렸다.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14일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에 대해 “아무 내용이 없는 빈 껍데기”라고 비난하면서도 “대화가 이뤄지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중의 연이은 대화제의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요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조평통의 이날 발표에 대해 형식과 격에 있어 북한 당국의 정식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통일부 당국자는 “발표 주체가 대남기구인 조평통이고 형식은 담화나 성명이 아니라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인 만큼 우리 대화 제의에 대한 1차적인 반응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한다”며 “앞으로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화 제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기싸움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서보혁 서울대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남한의 대화제의를 지금 바로 받을 이유가 없다”며 “박근혜정부 역시 구체적인 의제를 제시한 대화제의가 아니었던 만큼 보다 구체적인 콘텐츠와 적극성을 갖고 대화에 전적으로 나서라며 남한을 압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한번 국면전환의 공을 남측으로 넘겼다는 설명이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남한의 대화제의가 아직은 충분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 제기하기 원하는 사안’을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북한 당국은 여전히 개성공단에 국한된 대화제의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지난 3월 이후 대결구도를 주도해온 북한 강경파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제시한 평화체제, 대북제재 해제 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진전된 제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역시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북한으로선 국면 자체를 전환하기에 명분이 약하다는 설명이다.
북한의 전반적인 대남기류는 최근 눈에 띄게 누그러진 분위기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대북 대화제의를 내놓은 11일까지도 “혁명무력의 위력한 타격수단들이 발사대기 상태”라며 위협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후 무력도발을 직접 언급하는 표현은 사라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원산과 함경남도 지역의 노동·스커드 이동식 미사일 발사 차량(TEL) 다수가 11일부터 은폐와 노출 행동을 하지 않고 배치된 장소에 고정돼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지난 1일 최고인민회의를 마지막으로 이날까지 거의 2주째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김일성의 생일인 15일 ‘태양절’ 행사에서 김정은이 내놓을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 역시 한·미·중의 잇따른 대화제의에 고민이 깊을 것”이라며 “금명간 미·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 등이 북한에 전달되면 내부 고민을 거쳐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그간 대남위협 언사를 이어온 만큼 자신의 말에 행동이 갇힐 가능성이 크다”며 “전반적인 국면 전환보다는 강경기조를 이어가되 긴장 국면을 조정하려는 전략을 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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