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예금 '은행탈출'] 조여오는 세금 그물망…MMF·골드바·장롱으로 일단 '피신'

입력 2013-04-14 17:54   수정 2013-04-15 03:29

은행 계좌서 빼낸 자금 어디로

증여세 강화·국세청 금융자료 공유 확대
5만원권 인출 급증…실물투자도 '기웃'

< MMF : 머니마켓펀드 >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사는 양모씨(65)는 이자로 생활하는 은퇴생활자다. 은행 예금만 6억원 정도다. 여기서 작년 3000만원가량의 이자소득을 얻었다. 양씨는 지난 2월 만기가 된 정기예금 2억원을 찾아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었다. 올해부터 이자와 배당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된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다. 주식형펀드 등에 투자할 생각이지만 증시가 좋지 않아 투자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이다.

양씨 경우에서 보듯이 5억원 이상 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줄고 있는 것은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강화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면서 각종 세원을 찾아 나선 것도 신분 노출을 꺼리는 거액 자산가들을 자극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압박받는 자산가들

거액 자산가들은 올 들어 전방위로 과세 압박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소득종합과세다. 작년까지는 이자 및 배당소득이 연간 4000만원을 넘으면 대상이 됐다. 올해부터는 2000만원으로 낮아졌다.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적용받는 사람은 5만여명에서 20만여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도 강화된다. 거액 자산가들은 배우자와 자녀 등의 명의로 예금을 분산 예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축은행 등에 예금할 때 특히 그랬다. 원리금 합계 5000만원 이하만 보호되는 예금자보호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과세당국은 올해부터 배우자와 자녀 등 차명계좌에 분산돼 있는 예금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기로 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국세청의 자료 공유 범위를 넓히려는 정책이 추진되는 것도 자산가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2000만원 이상 현금이 거래될 경우(CTR), 이상 징후가 있는 현금이 1000만원 이상 거래될 경우(STR) 거래 현황을 FIU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정부는 이 기준을 낮춰 이상 징후가 있는 현금 거래의 경우 금액에 관계없이 보고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세청이 FIU에서 받아볼 수 있는 거래 정보도 △세무조사 △체납 징수 △탈세 혐의 거래 등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과세 기조가 강화되면서 자산가들이 금융계좌에 돈을 넣어두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탈세라는 악의적인 의도가 없다고 해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금융 거래가 위축되는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대기자금 급증…실물 투자도

은행 거액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은 일단 대기성 자금인 MMF 등으로 흘러가 단기부동화되고 있다. 확실한 투자처가 나타날 때까지 대기 상태로 기다리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18조4723억원이던 개인 MMF 자금은 지난 3월 말 19조8544억원으로 불어났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회피하려는 거액 자산가들이 주식형펀드 등에 투자할 것을 고려 중이지만 증시가 좋지 않아 일단 MMF 등에 예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골드바와 미술품 등 실물 투자에 나서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금은 매매차익이 비과세되고 미술품은 판매가격 6000만원 이하에 대해선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둘 다 최근 가격이 고점 대비 상당폭 떨어져 저금리 시대에 대안 투자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거액 자산가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을 반영, 지난달 27일 열린 K옥션 경매에서는 134점 중 91점이 팔려 낙찰 총액 41억5000만원(낙찰률 68%)을 기록했다.

은행 이탈 부추기는 제도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연간 이자와 배당소득이 일정액을 넘으면 근로소득 등과 합산해 최고 38%의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 작년까지는 이자와 배당소득이 4000만원 이상이면 대상이 됐지만 올해부터는 2000만원 이상으로 기준이 강화됐다. 올해 발생하는 소득부터 적용된다.

○차명계좌에 대한 증여 추정

배우자나 자녀 명의로 통장을 만들었을 경우 차명계좌임을 본인이 입증하지 못하면 올해부터 증여로 추정돼 세금을 내야 한다. 지난해까진 자금을 인출하지 않는 한 증여로 추정하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차명계좌에 돈이 들어간 순간부터 증여로 본다는 뜻이다.

○FIU 신고 기준 강화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회사는 자금세탁 등이 의심되는 1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 내역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이 기준을 연내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관련법이 개정되면 금액에 관계없이 탈세로 의심되면 무조건 FIU에 신고해야 한다.

박신영/임현우/김경갑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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