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 않으면 '무용'
국내기업 역차별 안받게
과감한 지원대책 필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의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진행되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이 당초 공약의 범위를 넘어서 추진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기업의 투자가 절실한 마당에 과도한 경제민주화가 자칫하면 기업의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아무리 추경(추가경정예산)을 지원해도 기업이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면 경기회복에 한계가 있다”며 “현재 상장기업 기준으로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만 52조원 수준인데, 이 중 10%만 투자해도 추경의 세출확대 규모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성실한 투자자에 대해서는 적극 밀어주고 뒷받침하고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꾸 누르는 것이 경제민주화나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관련, 국회 상임위에서 추진 중인 입법에 대해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국회 정무위에서 여야 공동으로 추진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처벌 관련 법안을 지목한 것이라고 배석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계열사에서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되면 명확한 증거가 없이도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돼 처벌하는 조항(일명 30%룰)을 도입하는 것이나,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포괄적으로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법안 추진을 염두에 두고 “여야 간에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추경이 경제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투자심리인데, 경제민주화가 균형이 지나쳐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억누르는 식으로 작용할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은 또 대규모 추경에 따른 국가 재정지표 악화 문제도 거론했다. 박 대통령은 “대규모 적자 국채를 발행할 경우 대폭적인 세출축소 없이는 상당기간 재정적자 지속이 불가피하다”며 “향후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비율 등 주요 재정지표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직 인수위 단계에서 추진했던 유아교육과 보육 관리체계 일원화(유보통합)가 무산된 것과 관련, “이해집단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막대한 재정부담도 있기 때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이견이 있는 과제일수록 국무조정실이 조정역할을 하되 해당부처가 통합모델 기본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코레일과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여러 가지 갈등 확대를 막는 과정에서 정부가 너무 나서지 말고 자율 조정이 되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통신비나 유통구조 개선도 감독보다는 선의의 경쟁구도가 정착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에 대해서도 “기업들에 부담이 되면 지키기도 어렵고 기업도 힘들어진다”며 “감축에 필요한 과학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수요와 시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종태/도병욱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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