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루는데 가난은 장애 안돼"
“제 인생의 세 번째 도전입니다. 20년 넘게 갈고닦아온 기술 전수는 물론 학생들에게 꿈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직업전문학교 출신으로 지난해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사람이 대학교수가 됐다. 전임강사도 조교수도 아닌 부교수로 임용됐다. 주인공은 보석 디자이너인 홍성민 쥬얼버튼 대표(46·사진). 이달 1일 경기대 장신구금속디자인학과 교수로 임용된 홍 대표를 최근 쥬얼버튼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2월 중순 경기대에서 교수 임용 제안이 왔어요. 고민을 했죠. 나는 ‘작가’이지 ‘선생’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부터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는 어떻게 하나 하는 것까지, 고심 끝에 인생 세 번째 도전의 발걸음을 떼기로 결심했습니다.” 홍 대표가 말하는 첫 번째 도전은 어린시절 가난과의 싸움, 두 번째는 가난을 극복하고 현재의 자신을 있게 만든 보석과의 인연이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뒤 중·고교 시절 이른바 ‘비행 청소년’이었다. 군대를 제대한 뒤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바로 ‘여성’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여성이 좋아하는 보석 관련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보석상을 찾았지만 번번이 퇴짜였다. 1991년 익산에 있는 직업전문학교(현 한국폴리텍5대학)를 찾았다.
“이를 앙다물고 ‘서울아 기다려라’라는 심정으로 (익산으로) 갔죠. 배운 것을 복습하고,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어 작업하면서 거의 밤낮없이 일했지요. 연마기를 끼고 살다 보니 손톱이 없어지더군요.”
그렇게 2년. 노력의 대가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주말마다 틈틈이 들러 보석 트렌드를 살펴보던 서울 혜화동의 드비어스(세계 최대 다이아몬드기업) 정보센터 매니저가 그에게 공모전 지원을 권했던 것. 직업학교 수료 첫해인 1993년 다이아몬드 투데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세계 2000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참가한 대회였다. 1995년엔 국제 진주디자인콘테스트에서, 1996년엔 드비어스가 주최한 다이아몬드 인터내셔널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았다. 같은해 국내 처음 선보인 ‘커플반지’가 히트를 쳤다. 이어 2004년 미국보석협회에서 골든애플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세계 4대 보석디자인대회를 석권한 첫 그랜드슬래머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을 때는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어요.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방법도 중요합니다. 돈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보석 디자이너로서 정상에 올랐고 정식 대학교수까지 된 홍 대표. 그는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꿈을 좇는 청년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방통대를 졸업한 그는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산업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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