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원가절감 누가 고민하겠나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이나모리 가즈오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기업인이다. 교세라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스토리도 그렇지만, 78세의 나이에 떠맡은 파산기업 일본항공을 정상화시킨 과정도 드라마틱하기 이를 데 없다. ‘경영의 신’이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교세라를 창업한 직후의 일이다. 파나소닉(당시 마쓰시타전기)이 브라운관 부품인 U자형 켈시마의 납품가를 10% 깎아달라고 요구해왔다. 첫 요구여서 군말 없이 들어줬다. 이듬해에는 20%를 낮추겠다는 통보가 왔다. 납품량이 늘어난 것도 아니어서 되묻자 1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20% 낮추는 것이 원칙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었다. 소문이 흉흉했다. 파나소닉과 거래한 뒤 도산한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니 망한 기업은 파나소닉의 요구를 거부하고 떠난 회사들이었다. 파나소닉과 거래를 계속한 회사는 망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철저히 합리화하고 싸게 만들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한다.
요구는 끝이 없었다. 결산보고서를 보여달라더니 일반관리비가 너무 많다며 3%를 더 깎자고 했다. 그러면 적자였다. 적정이익은 남겨달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납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이나모리는 원가계산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1엔이라도 싸게 납품할 경쟁사가 있다는 것 아닌가. 이나모리는 아직도 파나소닉을 고마워한다. 교세라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준 은인이라고 말이다.
파나소닉이라고 다르지 않다.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도요타로부터 카오디오 납품가를 20% 낮춰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익률이 3%대에 불과한 제품이었다. 직원들은 횡포라며 흥분했다. 마쓰시타는 그러나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5%라면 어렵겠지만, 20%라면 가능하지 않겠나. 모두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그의 설명은 이랬다. 단순히 그 제품의 원가를 내리자면 한계가 있지만,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마쓰시타는 결국 혁신적 제품을 개발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일본은 지금도 여전하다. 도요타는 최근 납품가를 일괄적으로 3% 내렸다. 지난해에도 한 차례 일괄 인하가 있었고, 2011년에는 최고 40%까지 단가를 인하했다. 명분도 희한하다. ‘엔고특별협력금’이다. 엔고 탓에 모기업이 적자의 늪에 빠졌으니, 협력업체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이렇게 해서 지난 3월 끝난 2012회계연도 단독결산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5년만이다.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회복한 배경은 바로 협력업체의 도움이다.
국회 정무위가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모기업의 납품단가 인하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기업은 아무리 적자를 보고, 제품 가격을 내려야 하는 처지라도 납품가를 인하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어기면 하도급 대금의 최대 2배에 이르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납품가를 건드릴 방법이 없다.
모기업이 협력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보자. 글로벌 시장에 원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장 가격이 있을 뿐이다. 시장 가격에 맞춰 끊임없이 원가를 낮춰가야 하는 구조다. 그러고도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내는 기업이 초일류기업들이다. 모기업과 협력사가 서로 양보해가며 원가절감과 혁신에 노력하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법으로 원가와 마진을 보장해주겠다니 누가 원가절감과 혁신을 고민하겠는가.
중소기업들은 소위 ‘단가 후려치기’에 연명하기도 힘들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잘 살펴보라. 지금도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협력기업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모기업과 손잡고 글로벌화에 성공한 기업들도 이미 부지기수다. 실력을 쌓은 기업들은 이제 해외 초일류기업들과 독자적으로 거래하고 있다.
물론 끊임없는 압박을 못 견뎌 도산한 협력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회사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이다. 그런 기업의 경영자들이 생산 현장이 아닌 여의도로 출근해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과 손잡은 결과가 하도급법 개정안이라면 지나친 얘기일까. 정치가 기업의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는 하도급법 개정안이다. 어디 이게 있을 법한 얘기인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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