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붓질한 70대 山사나이

입력 2013-04-17 17:23   수정 2013-04-17 23:42


네팔의 히말라야 자락 산등성을 가로질러 도착한 해발 2874m의 고라파니.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고 계단을 오르내리면 쉽게 숨이 차는 증상들이 자주 찾아온다.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안나푸르나의 설봉과 밤하늘을 장식하는 별자리들과 마주치면 이내 불평이 가라앉는다.

동양화와 서양화,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형산수’(반추상 산수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퓨전 한국화가’ 전래식 화백(71)이 히말라야 설봉들을 마주한 감회는 남달랐다. 최근 3년간 히말라야 설봉을 그리기 위해 수차례 네팔 트레킹을 다녀온 그는 요즘 매일 파주 작업실에서 히말라야 사생 작품을 정리하며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오는 20~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주제는 ‘세계의 산을 품다’.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를 배경으로 그린 독특한 조형산수 소품부터 400호 대작까지 모두 40여점을 출품하는 대규모 전시회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를 졸업한 전 화백은 1982년 문예진흥원이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칠순을 넘은 그는 요즘도 그때와 같은 혈기로 히말라야 작업을 즐기고 있다. ‘70대 산사나이’를 자처하는 그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30여개의 설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을 마음속에 담았다가 화면에 토해냈다.

“2009년 봄 나야폴에서 아침을 맞으며 안나푸르나의 모습을 보고 남은 삶은 히말라야의 다양한 얼굴을 그리겠다고 다짐했지요. 눈에 보이는 대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대신 웅장한 산세에 사람을 더해 나만의 시각으로 히말라야의 다양한 얼굴을 담아내는 게 정말 즐거웠거든요.”

전 화백의 히말라야 풍경에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그림 속 인물은 구상화에 대한 향수이자 생명력을 표현하는 기호다. 그는 “그림 속에 사람을 살짝 넣었더니 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화면이 더 풍성해지고 현대적 미감도 살아나더라”고 설명했다. 당나라 말기 주경현이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에서 논한 일품화풍(逸品畵風)과 사품론(四品論)을 기반으로 작업했다는 그는 “히말라야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고 탄생된다”고 강조했다.

“일품산수는 실물 그대로 묘사하는 전통 산수화와 달리 작가의 천재적 재주를 바탕으로 한 사의적(寫意的) 화풍인데, 어린 시절부터 공자를 비롯해 맹자 사마천 등의 책과 문학,철학서를 탐독한 것이 히말라야 그림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항상 새롭고(新),묘한 신비로움이 있으며(妙),능숙하고(能),뛰어나야(逸) 하거든요.” (02)580-13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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