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전거 첫 해외진출…MTB 개발…'혁신바퀴' 멈추지 않았다

입력 2013-04-18 15:29  

Best Practice - '자전거 업계의 인텔'시마노

미국 - 일본 시차 활용
불만 제기한 美고객 자는 동안 日 본사서 해결책 만들어내 고객감동 서비스로 도약 발판
"그냥 재밌는 것 만들어 봐라"…자유로운 연구 분위기 조성…기존관념 깨는 신제품 쏟아내




자전거 부품시장에서 일본 기업 시마노(SHIMANO)의 파워는 막강하다. “시마노가 없으면 세계 자전거 중 열에 여덟 대는 멈춰선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변속기와 브레이크, 프리휠(페달을 멈춰도 바퀴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장치) 등 자전거 주요 부품의 세계 수요 중 약 80~85%를 시마노에서 공급한다. 변속기의 경우 시마노 부품의 모델명이 자전거 변속기의 등급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이 때문에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에서 독점적 위치를 가진 인텔에 빗대 ‘자전거 업계의 인텔’이란 별명도 붙었다.

설립 당시 작은 선반 1대만 갖춘 공장이던 시마노는 창업 92년째인 지금 세계 43개의 법인을 두고 종업원 수 1만2368명, 매출 2458억4300만엔(약 2조8000억원, 2012년 기준)의 회사로 발전했다.

○‘동네 철공소’가 세계적 기업으로

시마노는 1921년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에서 금속가공 기술자로 일하던 시마노 쇼자부로가 자신의 성(姓)을 따 ‘시마노철공소’를 열면서 시작됐다. 1단 기어 프리휠 등을 생산하던 시마노는 새로운 시장에 적극 대응하며 성장했다.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기 전인 1940년대에 자전거는 운송 수단으로 중요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 시마노는 자전거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새로운 시장인 미국에 집중했다. 1965년 7월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근처에 시마노 판매 사무소를 열었다. 당시의 시마노공업은 4년 전부터 미국의 자전거대회에 출전하는 등 미국 시장을 목표로 여러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를 더욱 가속시킬 목적으로 판매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시마노공업의 해외 진출은 일본 자전거 업계에서는 최초였다. 미국 업계에서도 상사를 이용하지 않고 부품회사가 굳이 판매 회사를 만드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마노는 “자기 상품을 스스로 팔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고객 불만처리나 애프터 서비스, 보수 부품 판매에 힘을 기울였다.

노력에 행운도 따랐다. 미국인들은 비만이나 심장병 등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때마침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자전거를 이용한 재활 프로그램으로 건강을 회복한 것이 큰 자극제가 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자전거 붐이 일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자전거 부품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미국엔 부품회사가 없었다. 자전거 시장 전통의 강자였던 유럽회사들은 미국 기후와 풍토에 맞는 부품을 생산하지 않았다. 부품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유럽의 제조회사들은 자존심을 내세우며 개선해주지 않았다.

시마노에는 찬스였다. 시차를 활용해 고객들이 자는 동안 일본 본사에서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고객들은 빠른 대응에 감동해 시마노를 믿기 시작했고, 매출이 늘어났다. 1970년 미국 시장에서 46억엔의 매출을 올렸던 시마노는 1971년 매출 91억엔을 달성한 뒤 1972년과 1973년에는 각각 192억엔, 286억엔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상식을 깬 신제품 개발

1981년 창업주 쇼자부로의 셋째아들이자 당시 미국 법인을 담당하던 시마노 요시조가 일본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근처 산에서 자전거를 개조해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새로운 자전거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자전거는 도로를 달리기 위한 것으로 진흙이나 물이 묻으면 안 된다는 기존 상식과는 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을 본 시마노는 새로운 자전거 개발에 들어갔다. 지금은 보편화된 MTB자전거가 탄생한 배경이다.

시마노는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직원들을 닦달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쇼자부로의 장남 쇼조와 차남 게이조에 이어 1997년 시마노 사장이 된 요시조는 세 개의 그룹을 만들고 각각에 기묘한 지시를 내렸다. 각 그룹이 일상 업무외 시간에 고가, 중가, 저가의 상품을 만들라는 것. 팔 수 있는 제품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그냥 재밌는 것이면 된다는 것이 전부였다.

고가 제품 그룹에 속했던 팀장 가운데 한 명이던 나카무라 야스시는 다양한 방면의 마니아들을 모았다. 카메라, 자동차, 오토바이, 열대어, 오디오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 중 열대어가 힌트가 됐다. 어항 속 수초를 키우기 위한 공기 펌프를 보고 공기를 이용해 변속기를 움직이는 부품을 만들자는 생각이 나왔다. 이렇게 개발된 ‘에어라인스’는 고급 자전거용 부품으로 마니아층에 팔려나갔다.

쇼조의 장남으로 2001년부터 3대 경영에 나선 시마노 요조 사장은 “사람을 특정한 장소에 데려다놓지 않으면 새로운 발상은 불가능하다”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지금의 시마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마노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낚시대를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낚시하는 사람의 기분을 알지 못하면 안 된다’며 ‘현장을 모르고 어떻게 설계를 할 수 있나’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국 개발자들이 낚시배를 타러 바다로 갔다. 하지만 한 번 나간 사람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무려 한 달 반 넘게 어선을 타고 태평양을 빙빙 돈 것. 디자이너가 미국에 가서 3개월 동안 소매점을 둘러보고 보고서 한 장 올리지 않아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회사는 그런 분위기를 장려했다.

시마노는 영업, 제조, 기술 등 전반을 파악한 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도록 하는 인재 양성법을 고집한다. 한사람 한사람이 전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어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개발 부장에서 시작해 이사가 된 나가노는 “젊었을 때는 이런저런 일들을 시키면 어째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며 “제조 공정에 근무할 때는 잘못된 도면을 한눈에 바로잡을 수 있었고, 영업사원들이나 고객을 대할 때도 그들이 원하는 내용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회사 업무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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