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감정적 결정 막으려면 토론과정서 대안 제시 수용해야
얼마 전 직장 동료와 같이 식사를 하다가 가리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묘하게도 그 동료와 나는 같은 음식을 가리고 있었다. 생선이었다. 이유도 비슷했다. 어렸을 때 생선을 먹다가 가시에 걸려 고생을 했던 기억 때문에 가시를 골라내기 어려운 생선은 처음부터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조금 창피한 식습관이고, 비(非)합리적인 선택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오래 전 기억이 남긴 감정을 따르는 심리적 경향을 ‘감정애착’이라고 한다. 개인의 생활에서 감정애착은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의 감정애착은 중요한 결정을 비합리적으로 좌지우지한다는 면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세기 최고의 발명가로 알려진 토머스 에디슨도 감정애착에 매달렸던 역사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에디슨은 1884년 자신이 발명한 직류발전 시스템으로 미국 내에서 수많은 공장과 건물에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직류전기 장치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잦은 고장 문의와 누전, 화재 등의 원인이 됐다.
이때 크로아티아 출신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가 회사에 들어와 고장난 설비를 고치는 일을 하게 됐다. 테슬라는 에디슨이 만든 발전기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아내 발전기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에디슨은 이 성과에 대해 약속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테슬라는 회사를 떠난다. 그는 보다 효율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교류기술을 발명, 에디슨 전기회사의 막강한 경쟁사인 웨스팅하우스와 연을 맺는다.
위협을 느낀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시스템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애완동물들을 교류로 죽이는 잔인한 실험을 담은 전단지를 배포하고, 죄수들의 사형에 교류를 사용하는 전기의자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에디슨의 직원들은 교류가 더 우수함을 인정하며 에디슨을 설득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직류시스템이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교류시스템이 표준시스템으로 자리잡으며 경쟁에서 패배했다.
시드니 핀켈스타인 다트머스대 교수는 저서 ‘다시 생각하라’에서 왕컴퓨터의 설립자 왕안도 감정애착 때문에 결정적인 판단 실수를 범했다고 말했다. 1951년 설립된 왕연구소는 1970년대에 가장 성공한 컴퓨터업체 중 하나였다. 대표 제품은 전동타자기를 밀어낸 워드프로세서였다. PC가 보급되기 전인 당시에 워드프로세서는 전자식 타자기를 뜻했다.
워드프로세서의 성공에 심취한 왕안은 ‘개인용 컴퓨터는 내가 들어본 말 중 가장 멍청한 소리’라는 말로 PC의 가능성을 폄하했다. 그러다 1981년 IBM이 PC를 출시하면서 시장에서 큰 반향을 얻게 되자 왕안도 더 이상 시장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왕안은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패착을 둔다. 시장의 대세가 된 IBM 호환기종을 포기하고 독자적인 PC 개발을 추진하면서 독점 운영체계를 고집한 것이다. 왕안의 PC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경쟁에서 뒤처지는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왕안은 왜 IBM 호환기종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PC 개발을 추진했을까. 거기에는 두 가지 감정이 있었다. 먼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인 왕 워드프로세서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 같았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평가였다. 다른 감정은 IBM을 지독하게 싫어했다는 것이다. 사업 초기부터 기술라이선스 계약을 둘러싸고 티격태격했던 전력이 있던 터라 IBM이 자신을 속였다며 앙심을 품고 있었다.
많은 창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기업을 승계하는 경우도 자신이 설립한 기업과 자신의 자녀에 대한 지나친 감정애착 때문에 생기는 의사결정일 가능성이 높다. CEO의 감정적인 의사결정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핀켈스타인 교수는 ‘도전적인 토론그룹’이 감정적 결정의 함정을 막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구성원이 누가 되든 주어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수만 있어도 좋다. 토론의 효율성을 고려한다면 토론절차에 반드시 CEO의 결정에 도전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감정적인 판단에 휩싸인 CEO의 결정에 맞장구만 치는 대화라면 토론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CEO가 제시하는 결정에 대해 다른 관점의 대안을 검토하는 절차도 포함시킨다면 이런 결정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 당장 회사를 바꾸려면…협업하고 팀에 자율권 부여하라
▶ LTE 세로로 배열한 '?' 마케팅…미래고객 '1324세대' 타깃
▶ 르노車에 페인트 납품하던 바스프, 공정 효율화 방안까지 제시
▶ 日 자전거 첫 해외진출…MTB 개발…'혁신바퀴' 멈추지 않았다
▶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헬스케어·스마트 스토어…ICT 융합사업 키워 해외공략"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