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땅은 소유할 수 없는 자연적 산물"…토지공개념 토대 제공

입력 2013-04-19 15:26  


(18) 토지사회주의 개척자 헨리 조지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모순을 토지세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19세기 후반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정치경제학자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평범한 가정의 10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선원이 됐다. 그 후 식자공 등을 거쳐 신문사 기자로 활약하다 지방신문을 인수, 운영하기도 했다.

인쇄소 등을 전전하며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한 조지는 신문기자 시절 현장 취재를 통해 경제에 관한 유별난 기사를 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현장 취재 때마다 항상 만난 것은 으리으리한 건물 숲 뒷골목에 늘어선 흉물스러운 집들, 부자동네 뒤편에 예외 없이 들어선 ‘달동네’ 등이었다.

풍요와 함께 빈곤이 공존하는 현상.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젊은 조지의 머릿속에 각인돼 사회철학의 거대 담론으로 그의 평생에 걸친 탐구 주제가 됐다.

조지의 핵심사상은 인구 증가와 기술 개발로 경제가 번영해도 노동과 자본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제 발전의 대부분을 토지소유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분배를 좌우하는 권력을 지주가 장악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주목할 것은 땅 가진 사람이 그런 권력을 갖는 연유다. 토지는 인간의 모든 욕구 충족을 위한 물자의 창고일 뿐만 아니라 토지 없이는 노동과 자본은 쓸모없고 산업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토지는 인간 존립의 필수요소라는 게 조지의 설명이다. 그래서 토지권력은 필연적으로 독점적일 수밖에 없다. 자연히 땅 부자는 성장의 결실을 가로채게 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지주는 부자가 되는 반면 자본과 노동은 가난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지는 지주의 소득 자체를 근본적으로 의심하면서 토지 소유는 개인의 권리가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유는 이렇다. 인간은 노동, 능력, 신체 등 자신에 관한 것과 자기가 창출한 자본재, 소비재를 가질 자연적 권리가 있지만 토지는 다르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토지는 자연적 산물이고 그래서 사회 전체에 속한 것이기에 그것을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토지의 사적 소유와 지대를 인정하는 것은 그래서 정의롭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토지를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토지에서 생겨나는 소득은 불로소득이기에 전부 환수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게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제안한 것이 토지를 통한 부지가치에 대한 100% 과세이다. 토지세를 제외한 소득세, 관세, 상속세 등 모든 세금은 없애자고 한다. 토지세로 모든 재정지출을 충당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토지세는 ‘자연이 공짜로 준 기회의 독점’을 없애 부와 권력의 부자연스러운 불평등을 해소하고 고질적 빈곤을 퇴치하므로 가장 정의로운 조세라는 것이 조지의 설명이다.

이런 조지의 사상에는 핵심전제가 깔려 있다. 토지는 농업, 건축용, 공장용 등 그 용도가 애초부터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어 누가 토지의 주인이 되든지 정해진 대로 쓰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 없는 토지를 습득하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거나 이를 임대해 돈벌이하는 경우 습득·이용·임대 과정은 기계적이어서 지주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런 논리를 통해 토지 소유를 자연권에서 배제하고 토지소득을 불로소득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과정이 결코 기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은 토지의 용도와 관리 방법을 정할 수 없다. 토지 그 자체는 쓸모없는 물리적인 것, 그 이상이 아니다. 토지의 용도와 관리 방법은 인간의 선견지명을 통해 비로소 발견창조된다. 창조적 발견은 결코 자동적인 게 아니라 기업가적 과정이 필요하다. 창조적 발견을 뜻하는 기업가 정신을 간과한 것이 조지의 재산권 이론의 결정적 결함이다. 누군가가 주인 없는 토지를 먼저 습득하는 것이 정당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 앞서 그 토지의 용도를 발견창안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기 토지를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것이 정당한 이유도 그가 발견한 용도 때문이다. 누군가가 토지를 구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토지소득은 불로소득이 아니라 창조적 발견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토지가치를 전부 조세로 흡수한다면 용도의 발견 과정과 용도에 따른 토지 배분을 위한 가격체계가 없어진다. 그러면 정부가 토지시장을 대신해야 한다. 이는 토지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

토지독점이라는 조지의 말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토지 공급량이 많아 공급자들이 서로 경쟁하는 경우 수요자를 착취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급자를 교체할 수 있다. 힘센 지주가 번영의 결실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노동의 처지는 점차 불리해진다는 조지의 주장도 모순이 있다. 1850~1910년 미국의 총생산 대비 노동소득의 비율은 꾸준히 높아진 반면 토지소득 비율은 거의 변동이 없다는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조지의 사상은 여러 비판의 여지를 남겼지만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불행이나 게으름, 낭비 등과 같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토지의 사유재산제라는 사회제도에 있다는 새로운 시각과 빈곤의 해법으로서 토지세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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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개발이익 환수법' 영향

조지 사상의 힘

헨리 조지는 토지에 관한 한 전적으로 사회주의 입장을 취했다. 토지 외에는 철저한 자유주의자로서 자유무역과 경제자유를 강조했다. 토지세를 제외한 모든 조세의 철폐를 주장했다. 임금에 대한 세금은 노동 의욕을, 자본과 이윤에 대한 과세는 기업 활동을 위축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분배를 위한 누진세도 반대했다. 산업발전의 요인이 되는 부의 축적 의욕을 약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토지를 골고루 나누는 것은 규모의 경제가 주는 장점을 훼손한다며 토지 재분배도 강력히 반대했다.

정부 규제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관료가 모든 사람의 경제적 위치를 정하면 통제경제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규제는 관료 권력의 비대화는 물론 온갖 뇌물과 거짓을 부른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도 반대했다. 사회주의의 비효율성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의 침해라는 시각에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조지의 자유주의 사상은 큰 반향이 없었다.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던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매혹적인 표현, 지주에 대한 실감나는 비판, 징벌적 토지세였다.

조지는 당대의 거두였던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로부터 “비판할 가치도 없다”는 모욕을 당했지만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급진운동에 불을 붙였다.

조지의 장례식 참석자 수가 10만명이 넘었다는 것, 그의 저서《진보와 빈곤》이 200만부가량 팔렸다는 것도 그의 토지사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메이지유신의 일본에서는 1890년대 극심한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의 책이 번역됐고, 이는 토지세제 정비운동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조지의 사상은 중국의 손문(孫文) 삼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이뤘으며, 대만 토지세제의 모태가 됐다는 역사적 사실도 흥미롭다. 그의 사상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도 작지 않다. 1980년대 후반 ‘개발이익 환수법’ 등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0년대 들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일부 정책 참모들이 주장한 토지공개념은 조지 사상의 영향이 아닐 수 없다.

조지의 토지세에 대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논평도 흥미롭다. 밀턴 프리드먼은 순수토지세야말로 가장 덜 나쁜 조세라고 말한다. 제임스 뷰캐넌은 토지를 생산적 이용에서 사적인 비생산적 이용으로 전환하는 토지소유자에게 중과세할 것을 요구한다.

민경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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