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성이 다른 아들…바람난 마네家 출생의 비밀

입력 2013-04-19 17:14   수정 2013-04-19 23:44

스토리&스토리 - 예술가의 사랑 (47) 에두아르 마네



유명 인사의 사생아에 얽힌 얘기만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테마도 드물다. 그러나 전기 작가들에게는 이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다. 특히 과거 인물일수록 더 그렇다. 유전자 감식을 의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정적인 증거도 없고 그저 시답잖은 정황의 지푸라기를 붙잡고 추리의 미궁을 헤맬 수밖에 없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 미술의 길을 연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아들 레옹에 얽힌 얘기는 너무나 복잡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다. 남다른 추리력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 손 다 들 정도다. 우선 마네의 아들은 아버지와 성부터 다르다. 그는 레옹-에두아르 코엘라 린호프라는 아주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네의 부인이자 레옹의 어머니인 수잔 린호프는 네덜란드 소도시 졸트보멜 출신으로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재원이었다. 1849년 19세의 린호프는 파리 중산층인 마네 집안의 가정교사로 들어온다. 마네와 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마네의 아버지 오귀스트는 정부 고관을 지낸 인물로 당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마네는 17세, 그의 동생 외젠은 16세였다. 풍만한 몸매에 온화한 얼굴을 한 린호프는 미인 축에는 끼기 어려운 평범한 여인이었지만 마네는 곧 그와 연인관계가 된다. 외젠도 형 몰래 린호프와 로맨스를 즐겼다.

그런데 두 형제의 애정전선에 얘기치 않은 복병이 등장했다. 린호프가 임신을 한 것이다. 아버지 오귀스트가 알았다간 날벼락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린호프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마네의 집에서 나와 근처에 집을 얻고 아이를 낳았다. 미혼녀가 아이를 낳은 이상 아버지의 성을 붙일 수는 없었다. 마네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려니 했다. 동생 외젠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느꼈기 때문인지 마네는 아버지 몰래 린호프와 동거를 시작했다. 부모에게 솔직히 밝히고 결혼 승낙을 얻으면 될 텐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일부 전기 작가들은 린호프가 아버지 오귀스트의 정부였다는 논리를 펼친다. 아버지가 두 아들의 피아노 교사를 멀고 먼 네덜란드에서 데려온 것부터가 수상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오귀스트는 여자관계가 대단히 복잡한 인물이었다. 그가 나중에 매독으로 사망한 것도 유난스러운 바람기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두 아들도 린호프가 아버지의 정부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마네와 린호프는 자신들의 관계를 오귀스트에게 숨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네가 결혼한 것은 아버지가 죽은 뒤였다는 점은 이런 가정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면 결론은 자명하지 않은가. 레옹은 마네의 아들이라고. 그러나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마음 놓고 레옹을 자신의 아들로 합법화하려던 마네의 주장에 린호프가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는 아이에게 마네가 아닌 린호프라는 성을 부여하자고 주장했다.

청교도인 린호프로서는 한꺼번에 여러 남자와, 그것도 한 집안의 부자와 동시에 관계를 가진 것만 해도 이미 큰 죄를 지은 상태였다. 게다가 아이의 성을 바꾸는 행위는 자신이 지은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린호프의 뜻대로 아이는 어머니 성을 따르게 된다.

그러면 레옹의 아버지가 누군가 하는 문제는 영영 미궁으로 빠지는 것일까. 결정적인 증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갑론을박이 이어질 게 분명하다. 그래도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견해는 마네의 아버지 오귀스트가 레옹의 아버지라는 주장이다. 정황을 볼 때 가장 그럴싸하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제4의 인물일지도 모른다. 레옹은 마네 집안사람들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마네가 그를 어릴 적부터 그림의 모델로 삼으며 애정을 쏟았지만 그는 놀라우리만치 예술적 감수성이 결핍된 인물이었다. 사업가가 된 그는 마네가 유산으로 남긴 그림들이 팔리지 않자 그것들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부숴버릴 정도였다. 물론 레옹이 마네 자신과 동생 외젠의 아이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네는 1883년 4월30일 레옹의 출생 비밀을 숨긴 채 51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숨을 거뒀다. 사인은 아버지 오귀스트와 마찬가지로 매독이었다. 동시대 남성의 허위의식과 도덕적 이중성에 야유를 보냈던 보헤미안 예술가다운 죽음이었다.

최근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열리고 있는 마네 회고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시대를 앞서간 그의 개척자적 역할이 관객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냈으리라.

그러나 한편으론 베일에 싸인 그의 로맨틱한 삶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 레옹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 5점이나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의 그림 앞에서 예술적 가치를 곱씹음과 동시에 한 사내아이의 흥미로운 출생의 비밀을 캐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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