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화 미르기술 사장 "글로벌 기업과 겨뤄보자"

입력 2013-04-19 17:26   수정 2013-04-19 23:55

파워기업인 생생토크 - 박찬화 미르기술 사장

직원 30%가 연구인력…매출 10% R&D에 투자…끝없는 신제품 개발로 승부
獨 보쉬에 독점 납품 계약…GE·GM·에어버스도 고객…'다닐만한 회사' 만드는 게 꿈



독일 자동차공업의 중심지 슈투트가르트. 벤츠와 포르쉐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도 이곳에 있다.


지난 3월20일 보쉬 본사에서 두 사람이 협약서에 서명한 뒤 손을 잡았다. 보쉬 임원인 마쿠스 융 박사와 박찬화 미르기술 사장(52)이다. 이날 협약에는 한국의 미르기술이 생산하는 ‘표면실장기술(SMT) 자동광학검사장비’를 보쉬에 5년 동안 독점 납품한다는 게 담겨 있었다.

보쉬는 자동차용 전장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검사장비로 한국의 미르기술 제품을 사용하기로 한것이다. 미르기술이 납품하게 될 검사장비는 인쇄회로기판 위에 장착되는 전자부품이 설계도대로 제대로 장착됐는지 검사하는 장비다. 이 장비는 2500만화소의 고화질 성능을 가진 카메라로 초당 75회 찍어 평면과 3차원을 병행해 검사하는 첨단시스템이다.

이날 미르기술은 축제의 도가니였다. 그동안 모바일·TV·PC·항공 분야의 세계 정상급 기업들과 맺은 파트너십 계약에 이어 자동차전장 분야의 최고봉이자 130년 역사를 갖고 있는 보쉬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날 박 사장의 머리에는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2000년 수원 영통의 허름한 가건물에서 창업해 초기 자금난을 가까스로 넘기며 기술개발에 나섰던 일, 해외 수십곳의 전시회를 다니며 바이어를 어렵게 한 명씩 개척하던 일 등이 떠올랐다.

경기 군포 한세대 맞은 편에 있는 미르기술은 전자부품 검사장비 전문업체다. 미르기술의 검사장비는 전자부품 조립과 생산 과정에서 부품이 제대로 결합됐는지를 순식간에 점검한다. 휴대폰이나 TV, 자동차의 전장품, 항공기의 전자장치도 이들 장비에 의해 점검이 이뤄진다. 검사가 제대로 안 되면 자동차나 항공기는 자칫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그만큼 전자제품의 제조 공정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인 공정이다.

이 회사 회의실에 들어서면 수많은 상장과 특허증 수상트로피 등이 2개 벽면에 가득 차 있다. 산업포장 천만불수출탑 경기중소기업인상 글로벌스타기업인증서 등이다. 이뿐만 아니다. 글로벌 마켓 컨설팅업체인 프로스트 앤드 설리번의 우수기업상도 세 차례 받았다.

박 사장은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PRG리서치 조사 결과 지난해 ‘표면실장기술(SMT) 자동광학검사장비’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장비의 연간 세계시장 규모는 5000억원 정도인데 이 중 우리의 시장점유율이 10%가 넘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검사장비 분야에서 강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연구개발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박 사장은 미국 스티븐스공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과 전자계산학을 전공해 각각 석사 학위를 땄다. 그는 국내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2000년 창업했다. 수원 영통에서 직원 5명으로 출범했다.

3년쯤 지나자 자금난이 몰려왔다. 벤처 열풍이 꺼진 직후라 누구도 투자하길 꺼렸다. 박 사장은 “수많은 벤처캐피털을 돌아다녔으나 문전박대를 당하던 중 다행히 기은창투 한국투자파트너스 기업은행이 18억원을 투자해줬고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자금을 수혈받아 가까스로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수한 인재를

모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박 사장은 “충분한 대우를 해줄 수 없었지만 사명감을 갖고 외국 선진기업과의 싸움에서 이기자”고 인재들을 설득했다. 당시 이들 장비는 유럽 일본 등이 앞서 있었다. 박 사장은 “창업 초기 세계시장에 약 50개의 검사장비업체가 있었는데 우리 순위는 51번째였다”며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하려면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설득해 한 명씩 모았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외 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221명의 직원 중 연구개발인력은 70여명으로 30%가 넘는다. 이 중 석·박사가 30명이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의 10~11%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둘째,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이다. 이 회사는 처음엔 SMT 자동광학검사기를 주력 제품으로 성장했다. 전자부품의 장착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검사하는 장비다. 그 다음으로 ‘SPI(Solder Paste Inspection) 검사기’ 분야에 진출했다. 인쇄회로기판에서 접합 역할을 하는 주석혼합물이 잘 발려 있는지 검사하는 장치다. 최근 들어선 LED패키징검사기 분야에도 진출했다. 이로써 전자부품 검사 분야에서 일관화된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됐다.

그는 매출이 늘어 허리를 펼만 하면 또 다른 제품에 도전했다. 박 사장은 “어차피 전자 분야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전자부품 생산라인에서 이들 세 가지 장비는 세트 개념의 필수품이어서 생산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들 세 가지 장비를 묶어 생산라인 개선에 활용할 수 있는 ‘인텔리시스’라는 시스템도 개발했다.

셋째, 적극적인 해외마케팅이다. 이 회사는 연간 10여회 이상 해외전시회에 참가한다. 독일·일본·중국·미국 등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도 출품한다. 이를 통해 세계 1000여개의 거래처를 발굴했다. 주요 거래처는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를 비롯해 보쉬 폭스콘 GE GM 록히드마틴 에어버스 플렉트로닉스 등이다. 박 사장은 “10년 전에는 외국의 경쟁업체들이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무척 관심이 많다”며 “전시회에 출품하면 올해는 어떤 신제품을 들고 나왔는지 우리 부스에 먼저 찾아와 꼬치꼬치 물어볼 정도”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직원들이 다닐 만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박 사장은 “급여와 복지 개선은 기업활동이 선순환구조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결국 세계적인 업체로 자리매김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유학 권유한 부친…"달러를 썼으면 더 많이 벌어와라"

박찬화 사장은 1984년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19세기 철도차량 사업가인 에드윈 스티븐스의 재산으로 설립된 뉴저지주의 스티븐스공대(SIT)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대학은 기계·조선·재료공학 등 이공계 중심 학교다.

그는 당시 귀한 달러를 쓰면서 유학을 갈 필요가 있는지 망설였다. 국내 대기업에 취직하려 했던 그에게 유학을 강력히 권유한 것은 부친인 박장서 명예회장(현재 88세)이었다. 영국의 런던정경대(LSE)를 나와 금융계 임원을 지낸 부친은 “내가 재산은 물려주지 못해도 공부는 물려주겠다”며 “지금 달러를 쓰는 대신 앞으로 더 벌어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가 8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과 직장 생활을 한 뒤 국내 대기업 근무를 거쳐 창업을 결심한 것도 “달러를 벌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르기술은 검사장비를 약 3000만달러어치 수출했다.

유학비의 수백배를 한 해에 벌어들인 셈이다. 박 사장은 “하지만 아버님께선 그 정도 갖고 어림없다”며 “달러를 더 벌어오라고 닦달하신다”고 웃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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