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법인 매출 23% 급감…"밭 갈아엎고 사업 포기할 판"
전통시장 살리려면
"자영업자 자구노력" 38%…규제 아닌 상생유도로 가야
두부 콩나물 등 콩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기업 자연촌은 지난 1년간 직원을 100명가량 줄였다. 한때 300명이 넘던 직원 수가 이제 200명을 조금 넘는다. 작년 4월 시작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출이 급감,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홍윤표 자연촌 부사장은 “공장 가동률이 80%대에서 60%대로 떨어지고 자금에도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상추 케일 등 채소를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있는 조은영농의 우미라 사장도 요즘 고민이 많다. 그는 “납품 물량이 갑자기 줄면서 작년 6월 부추밭 600평을 갈아엎은 뒤 땅을 올초까지 놀렸다”고 말했다. 지난달 밭 일부에 부추를 다시 심긴 했지만 매출이 원상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통시장 “이익 되레 줄었다”
매장 연면적이 3000㎡ 이상이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계열사가 직영하는 유통업 점포의 경우 월 2회씩 의무휴업하도록 한 게 22일로 시행 1년을 맞는다. 직접 영업규제를 받는 대형마트는 물론 중소·영세업체가 많은 납품회사와 농어민도 직격탄을 맞았다.
농업경영인연합회 등 6개 농수산업단체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이후 작년 말까지 8개월간 농어업법인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4%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대형마트 납품업체들의 단체인 ‘농어민·중소기업·영세임대상인 생존대책투쟁위원회’는 개정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추진 중이다.
전통시장이 얻은 반사이익은 미미하다. 한국경제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문을 닫으면 ‘가까운 전통시장을 찾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19.6%에 불과했다. 대신 ‘휴업 전날인 토요일에 대형마트에 간다’는 응답이 41.6%로 가장 많았다. 일요휴무가 소비자의 발길을 대형마트에서 전통시장으로 유인하는 데 기대한 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응암동 대림시장 박만규 상인회총무는 “걸어서 15분 거리인 이마트가 매월 두 차례씩 일요휴무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장을 찾는 손님이 특별히 늘어나진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영업규제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박석훈 돈암제일시장 상인회장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아니라 경기침체가 문제”라며 “설 이후로는 장사가 전혀 안 돼 점포정리를 고민하는 상인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이 지난해 전통시장 점포 1511곳을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매출이 10만원 미만인 점포가 19.3%로 2010년보다 5.6%포인트 늘어났다. 대형마트가 쉰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소비자 불편만 가중
전통시장과 동네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의 자구노력’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38.2%로 가장 많았다.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20.4%뿐이었다. 최인수 마크로밀엠브레인 대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전통시장과 동네 상권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은 채 소비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세대 경제학부 정진욱 교수와 최윤정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의무휴업 영향으로 대형마트 매출은 월간 2307억원 줄어든 반면 전통시장과 소형 슈퍼마켓 매출은 월간 448억~515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대형마트에서 줄어든 소비의 20% 정도만 전통시장과 중소 상점으로 옮겨가고 나머지는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연간 2조700억원 이상의 소비가 ‘증발’해 버린 것으로 추산했다. 대형마트 역시 농산물 발주가 줄면서 납품업체의 공급량이 15~30%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승호/강진규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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