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가 '통상임금 재앙'을 불렀나

입력 2013-04-21 17:57   수정 2013-04-22 05:03

전예진 <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 >


“기업들이 수당을 안주고 꼬불친 돈이 38조원이나 된다고?”

지난주 한국경제신문이 집중 보도한 ‘통상임금 줄소송’ 기획기사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아냥성 반응이다. 노동계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켜 지난 3년치 휴일근무수당 등을 다시 계산해달라’고 집단소송을 낼 경우 기업들은 총 38조5000억원의 추가 인건비 부담을 질 수도 있다는 것이 기사의 주된 내용이었다.

사용자가 당연히 지급해야 할 돈인데 체불한 것이라면 ‘꼬불친’ 것이 맞다. 하지만 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통상임금’ 범위에서 빼놓았던 상여금을 대법원이 지난해 느닷없이 포함시키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잘못이 있다면 법령으로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어야 할 기준을 ‘지침’이라는 모호한 형태로 20년 이상 버텨온 정부에 있다. 고용노동부는 오래전부터 일부 사업장 노조들이 이 문제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을 때 진작에 지침을 상위 법령으로 옮겨 놓았어야 했다.

이제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들에 돌아가게 생겼다. 물론 지난 수십년간 노사협상 과정에서 순간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땜질식 양보와 처방으로 일관한 일부 사업장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자동차 노사규약은 짜깁기와 너저분한 단서조항으로 가득한 한 권의 책자에 가깝다.

하지만 노동계도 일부 사업장의 판례를 구실로 크게 ‘한몫’ 챙기겠다는 욕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연평균 임금 6000만~7000만원에 명절귀향비, 휴가비, 유류비까지 챙겨가는 대형 사업장 노조일수록 특히 그렇다. 대기업 노조는 매년 물가상승률과 업황을 고려해 회사 측과 단체협상을 해왔다. 그런데도 과거 수당을 다시 계산하자는 것은 스스로가 협상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

수조원씩 유보금을 쌓아 놓은 대기업이라도 몇천억원대 소송을 당하는 것은 부담스런 일이다. 하물며 중소기업들에는 존폐의 문제가 된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보유현금이 10억원도 안되는 판에 60억원짜리 소송을 당하면 회사를 유지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누가 이 재앙을 불러들였는가. 정부, 법원, 기업, 노조 등은 서로 누구 탓을 할 것 없이 하루빨리 원만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복잡하고 경계가 모호한 임금산정 체계를 법제화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전예진 < 산업부 기자ㅣace@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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