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도입 1년…회사채 수요예측의 역설

입력 2013-04-22 17:40   수정 2013-04-23 03:33

기업들 "가격 공개 껄끄럽다"
사모사채·CP 자금조달 늘어
'일괄신고서'로 수요예측 면제도

금융당국 "제도보완 2탄 준비"



▶마켓인사이트 4월22일 오전 8시51분

회사채 가격 결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수요예측 제도가 시행 1년 만에 ‘딜레마’에 빠졌다. 수요예측 제도를 통한 회사채 발행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기업들이 사모나 일괄신고 등 제도 적용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어서다. 내달까지 회사채 발행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는 수요예측 제도 개선안을 준비 중인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수요예측이란 발행사와 주관사가 회사채 희망금리 구간을 제시하고 기관투자가들의 참여금리와 물량 수요를 토대로 최종 발행 조건을 결정하는 제도로 지난해 4월부터 시행 중이다.

○수요예측 면제 조달 시장 ‘북적’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사모 방식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올 들어 이날까지 국내 기업이 발행한 원화 사모 회사채(500억원 이상 기준)는 모두 15건으로 1조827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 발행금액인 1조7365억원을 벌써 넘어섰다.

만기 1년 이상인 장기 CP를 사모 방식으로 발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올 들어 1000억원 이상의 장기 CP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은 GS건설(8000억원) 대우조선해양(5000억원) 삼성물산(2000억원) 등 총 9곳으로 2조44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기업들이 올 들어 일반 공모 회사채가 아닌 사모 방식의 자금 조달을 늘리는 것은 증권신고서를 내고 수요예측을 받아야 하는 절차상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다. 투자자가 50인 미만인 사모 방식은 수요예측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재무팀 관계자는 “수요예측을 실시하면 발행 기간이 길어져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는 데다 수요예측에 실패할 경우 이를 증권신고서를 통해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 이미지도 나빠진다”며 “가능하면 사모 방식의 자금 조달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회사채 발행 기업에 속하는 남동 남부 서부 중부 등 한국전력 발전자회사들은 올해 회사채 발행 방식을 아예 일괄신고서 제출 형태로 바꿨다. 연초 발행 규모를 공시하고 기업이 그 한도 내에서 수시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일괄신고 방식을 선택하면 수요예측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투자자 “기업 횡포 여전”

금융당국은 수요예측 제도 도입 이후에도 기업들의 ‘횡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제도 개선안을 준비 중이다.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저금리 발행을 밀어붙이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기업들의 저금리 회사채 발행 강행은 투자자들과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올 들어 한화자산운용과 ING자산운용은 제재조치를 각오하면서까지 수요예측 때 사기로 한 회사채 인수를 거부했다. 일부 기관은 “예측 불가능한 금리로 회사채를 사는 위험을 떠안느니 차라리 사모 회사채에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금융당국은 다음달 중 수요예측 제도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많은 우량기업이 사모 발행이나 일괄 신고 방식으로의 전환 등을 고민 중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금융당국도 딜레마에 빠졌다”며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다른 발행방식으로 달아나는 기업을 막을 방법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태호/윤아영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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