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논문 3건 네이처지에 실어…"일제·전쟁 등 동시대 아픔 겪은 또래 노인들에게 도움 됐으면"
한 재일교포 원로 의학자가 평생 연구활동을 하며 모은 재산 수십억원을 익명으로 국내 복지단체에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22일 재일교포 A씨(88세)가 한국의 저소득층 독거 노인을 위해 써 달라며 29억원의 기부금을 보내왔다고 23일 밝혔다. 이 금액은 지금까지 개인이 익명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낸 기부금 중 최대 액수다.
이 원로 의학자는 기부금을 내며 “남을 돕는 것은 원래 조용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고 모금회 측은 전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1925년 평안북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A씨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해방을 맞고 이후 남북이 갈라지면서 북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오사카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5년간 근무한 뒤 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평생을 살아 왔다.
그는 세계적 권위의 과학학술지인 네이처에 세 건의 논문을 싣는 등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인정받았고 연구 결과로 얻은 특허권을 팔아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젊은 시절 타국생활을 혼자 헤쳐나가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잊은 적이 없다”며 “일제와 전쟁 등 동시대 아픔을 겪은 또래 노인들에게 기부금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A씨의 기부금을 3년간 저소득층 독거 노인의 식사를 지원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지원 대상자는 전국 249곳의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서 선정한다. 모금회 측 관계자는 “사랑의열매 나눔봉사단과 노인 돌보미가 주 2회 독거 노인을 직접 방문해 식사를 전달하고 건강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기부자의 뜻을 받들어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소중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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