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경영학] 외형성장 유혹에 빠진 日 야마토생명, 글로벌 금융위기로 '치명타'

입력 2013-04-23 17:17   수정 2013-04-23 23:46

S&F 경영학 - 성공과 실패에서 배운다

日 야마토생명의 파산

고배당 경쟁 벌이던 日생보사, 90년대말 저금리로 줄도산
2000년대 중반부터 리스크 관리 못한 야마토, 결국 '붕괴'
한국도 확정형 고금리상품 비중 50% 넘어 위험 도사려




“정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2008년 10월10일 나카조노 다케오 일본 야마토생명 사장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해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20여일 만에 일본 보험사가 파산한 것이다. 당일 닛케이225지수는 하루 만에 사상 두 번째 낙폭인 11.38% 떨어져 5년4개월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엔화 가치도 한때 1달러에 97엔대를 돌파하는 등 요동쳤고, 중국 상하이와 선전 증시도 각각 3.57%와 5.52% 폭락하는 등 아시아 각국으로 여파가 번졌다.

총자산 2831억엔(2008년 3월 말 기준), 일본 생보업계 33위였던 야마토생명의 파산은 일본 보험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1997~2001년 버블 붕괴와 함께 7개사가 연쇄 부도를 맞았던 일본 생보업계는 그 후 7년간 위험 관리를 강화하며 고객의 신뢰를 되찾는 중이었다.

○일본 버블 붕괴와 생보사 연쇄 부도

일본 경제와 함께 승승장구하던 생보사가 파산한 건 1997년 4월 닛산생명이 처음이었다. 이후 2001년 도쿄생명까지 4년간 총 7곳의 생보사가 줄이어 문을 닫았다.

생보사들은 1980년대 호황 시절 세일즈 레이디(sales lady)라 불리는 설계사 채널을 활용, 고이율·고배당을 주는 저축성 보험을 대거 판매했다. 새 사업자도 계속 증가, 1987년 24개사이던 생보사가 1999년 46개사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경쟁이 심화되자 생보사들은 더 높은 예정이율을 제공하는 상품을 만들어 팔아댔다.

외형 경쟁을 벌이던 생보사들에 1980년대 중반 저금리 물결이 밀려왔다. 일본 정부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로 인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시작했고, 1989년까지 연 2.5%대 저금리가 지속됐다. 1990년 연 6%까지 기준금리가 반짝 상승하기도 했으나 2001년엔 다시 연 0.25%까지 떨어졌다.

약속된 고금리·고배당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생보사들은 주식 부동산 해외파생상품 등 고위험 자산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버블이 급격히 꺼지면서 1991~2000년 일본 주식시장은 64% 폭락한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2%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버블 붕괴는 생보사에 치명상을 입혔다. 저축성 상품 비중이 가장 높았던 닛산생명이 처음 두 손을 들었다. 보험사가 파산하자 고객들의 불안이 커지며 신규 계약자가 줄었다. 이는 보험 영업수지마저 악화시켜 2001년 도쿄생명까지 4년간 6개의 생보사가 줄이어 파산했다.

이후 일본 생보사들은 전략을 바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다. 자산운용을 보수적으로 바꾸고, 적립금을 쌓아 지급여력을 높이는 한편 설계사 외에 새 판매 채널을 구축하는 등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008년까지 추가적으로 파산하는 회사는 없었다.

○야마토생명, 위험을 선택하다

야마토생명은 다른 생보사와 달랐다. 2000년대 중반 또다시 외형 성장의 유혹에 빠졌다. 자산 규모 30위권대의 이 중소형 생보사는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는 방카슈랑스 영업보다 전속 설계사 채널을 통한 공격적 확장 영업을 선택했다. 설계사에게 많은 수수료를 줘 새로운 계약을 끌어올림으로써 외형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2005~2007년 사업비율(보험료 수입 중 판매수수료, 인건비 등으로 쓴 비용의 비율)을 보면 같은 규모의 생보사(13% 수준)보다 두 배가량 높은 25%나 됐다.

사업비를 많이 쓰다 보니 자산운용 수익률을 높여야 했다. 2005년 닛코증권 부사장을 사장으로 영입하고 해외주식, 해외부동산, 파생상품 등 리스크가 높은 상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전략은 2005~2006년 업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은 9~10%에 달하는 자산운용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처음엔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7년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악화되자 날개 없는 추락을 시작했다. 2007년 해외 증권에서만 57억엔의 매각 손실과 11억엔의 평가 손실을 냈고, 당기 순익은 전년의 절반 수준인 7억엔으로 떨어졌다.

2008년 9월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결정타를 날렸다. 2008년도 유가증권 평가 손실은 112억엔으로 치솟았고, 순자산은 115억엔 부족으로 돌아섰다. 지급여력비율은 적정 권고수준인 200%에 턱없이 못 미치는 27%로 급락하며 파산했다. 파산 당시 국채 투자 비중은 업계 평균인 37%보다 훨씬 낮은 10% 미만이었고, 해외 투자 등 고위험 자산의 비중은 업계 평균인 20~30%대를 훨씬 넘는 50%에 달했다.

○야마토생명 파산이 주는 시사점

최근 국내에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일부 보험사들이 자산 운용을 공세적으로 바꾸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영업력이 약한 중소형 생보사일수록 투자수익 제고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손해보험사 사례이긴 하지만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공개 매각된 그린손해보험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국내 생보사들의 부채 중 확정 금리형 상품의 비중은 54%에 달한다. 또 이 중 7% 이상의 고이율을 주는 확정 상품의 비중이 55%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국내 생보사들은 자산운용에서 적자를 보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2011년 기준 생보사들의 자산운용에 의한 투자 손익은 -1조1000억원으로, 이를 보험 영업 이익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자산을 공격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유혹이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자산 운용을 해야 하는 보험업에서는 언제든 야마토생명과 같은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세용 BCG 이사/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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