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자 아사히신문의 사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일본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이 나라(일본) 위정자의 국제감각은 그런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비판의 초점은 일본 현직 고위 각료와 국회의원들의 대규모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맞춰졌다. 사설은 일본 자민당 극우 정치인들의 철없는 행동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북한 핵 미사일 문제 등으로 어느 때보다 동북아 3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 정치인들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야스쿠니 참배를) 외교문제로 만드는 쪽이 절대적으로 이상한 것”(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이라는 어이없는 ‘망언’에 대해서는 “(주변국을 생각하지 않는) 독단적인 생각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아사히신문 계열의 방송사인 TV아사히도 전날 저녁 방영된 시사프로그램에서 정치 평론가의 말을 인용, “아소 다로 부총리는 ‘외교치(癡)’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음정을 못 맞추는 음치처럼 국제관계에 무능한 ‘외교 음치’라는 지적이다.
일본 내에서도 이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베 내각의 최근 행보는 비이성적이다. 기세가 오른 아베 신조 총리는 급기야 참의원 예산위원회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가 보는 시각에 따라 ‘침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아베도 집권 초기엔 조심했다. 내각 관료들에게 당분간 ‘경제’ 이외의 이슈는 제기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 봉인은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 등 윗선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70%를 넘는 지지율이 든든한 ‘빽’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욱 무서운 건 이런 왜곡된 역사인식이 아베 내각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요미우리신문은 같은 날 ‘외교문제는 피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의 방일을 취소한) 한국의 외교자세에는 의문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한·일 간 외교경색의 원인이 오히려 ‘별것 아닌 일에 펄쩍 뛰는’ 한국에 있다는 뉘앙스였다. 지지율에 잔뜩 취기가 오른 선장 그리고 그를 따르는 다수의 선원들이 일본이라는 거함을 위태롭게 몰고 가는 요즘이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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