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된 지 3년이 채 안 된 벤처기업이 국내 보청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당 150만원이 넘던 보청기 시장에 30만원대 제품을 내놓아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김정현 딜라이트보청기 대표(28·사진)가 주인공이다.
○“실패 사례에서 배웠다”
김 대표는 지난 2월 가톨릭대 경영학과를 막 졸업한 청년이다. 하지만 그가 2010년 7월 시작한 회사 딜라이트보청기는 직원 47명에 직영 대리점도 14곳이나 된다. 지난해 4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는 6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 순위 5위다.
김 대표가 보청기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때인 2008년. 사회적 기업을 연구하는 대학연합 동아리 ‘넥스터스’에서 공익기업 모델로 유명한 인도 ‘아라빈드 안과병원’의 보청기사업 실패 사례를 연구하면서다. 백내장 수술 전문 아라빈드병원은 저소득층엔 무료로 수술해 주고, 중산층·고소득층엔 유료 시술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김 대표는 “아라빈드의 보청기 사업이 실패한 것은 시장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품이 너무 크고 AS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시장을 조사한 뒤 △싼 가격 △작은 크기 △철저한 AS가 가능하다면 보청기 사업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저가 제품으로 가격혁신 주도
1500억~2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보청기 시장은 지멘스와 스타키 등 외국계 기업과 세기보청기 대한보청기 등 국내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보청기 가격은 개당 1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딜라이트는 34만원짜리 저가 제품을 내놨다. 부품을 직접 수입해 자체 제작하는 방식으로 생산원가를 낮췄고, 홈페이지와 직영점에서만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 과정의 거품을 걷어냈다. 김 대표는 “가격이 경쟁사 제품들에 비해 싼 것은 제조 과정과 판매유통 구조가 단순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불이나 반품 요청이 들어오는 비율이 2~3% 정도로 동종 업계 평균(8%)보다 크게 낮은 것만 봐도 품질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빈곤층이 청각장애인 판정을 받으면 보청기를 살 때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최대 34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감안했다. 사실상 ‘공짜’로 보청기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딜라이트보청기는 설립 첫해인 2010년 6억원 매출을 낸 데 이어 이듬해 15억원, 지난해 42억원어치를 팔았다. 딜라이트의 성공에 놀란 경쟁 업체들이 지난해부터 30만~60만원대 보급형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부터 사업 경험
김 대표는 귀금속 유통과 부동산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일찍 사업하는 걸 보고 배웠다. 중학생 때는 게임 아이템을 판매한 경험이 있고, 고교생 때는 전자사전과 MP3, 명품가방 등의 거래로 꽤 많은 돈을 벌어 딜라이트코리아를 창업할 수 있는 종잣돈까지 마련했다.
보청기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2009년에는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그는 2010년 7월 친구 두 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저가 제품으로 보청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경쟁업체들의 견제가 들어왔다. 제품 제조와 연구·개발 과정, 홍보문구 등에서 여러 시비가 붙었고 일부 직영점이 영업정지를 당한 적도 있다. 김 대표는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우면서 돈도 버는 사업을 더 많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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