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싼 제품·新시장 개척…파괴적 혁신이 1등 이기는 법
도요타에 추월당한 GM…저가車 공략 무시하다 고급차 시장까지 위협받아
기존 조직 혁신 하려면 유연·역동 독립조직 만들어야
“역사적으로 모든 산업에는 선도 기업이 있었습니다. 선도 기업이 하나면 독점 시장이지만, 실제로 독점 시장이 그리 많진 않습니다. 대부분 산업이 대여섯 개 기업이 선도하는 시장이죠. 그런데 많은 시장에서 선도기업은 사라졌습니다. 왜 기업이 죽을까요. 이것이 첫 번째 미스터리입니다. 선도기업이 있다면 비(非)선도기업도 있죠. 또한 많은 시장에서 비선도기업이 선도기업을 물리치고 선도기업이 됐습니다. 비선도기업은 어떻게 선도기업을 이겼을까요. 이게 두 번째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미스터리의 해답이 같습니다. ‘파괴적 혁신’입니다.”
연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봄학기 여섯 번째 시간. 이호욱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강조한 ‘파괴적 혁신’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201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50대 경영사상가’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등 현대 경영학계에서 최고의 전략 전문가로 꼽힌다.
◆“선도기업을 이기는 길은 파괴적 혁신”
이 교수는 교실 화면에 X축과 Y축이 교차하는 그래프를 띄웠다. X축은 시간, Y축은 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성능이다. 그래프 안에 우(右)상향하는 선이 그려진다면 그 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품의 성능이 좋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교수는 이어 Y축 아래 3분의 1 지점에서 가파르게 우상향하는 빨간색 실선과 Y축 가운데 지점에서 완만하게 우상향하는 검은색 점선을 그렸다. 두 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만나는 모양을 보인다.
“빨간 실선은 선도기업입니다. 선도기업이 제품을 계속해서 개선하고 혁신한다는 것을 보여주죠. 검은 점선은 소비자입니다. 이때 Y축은 제품의 기대 수준을 나타냅니다. 고객도 제품이 개선되길 원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빨간 실선이 검은 점선을 만나는 것은 기업의 혁신이 소비자가 원하는 수준을 만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도기업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죠. 그런데 선도기업이 언젠가는 비선도기업들에 따라잡힙니다. 파괴적 혁신을 통해서입니다. 파괴적 혁신은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제품 성능을 향상시키는 과정인 지속적 혁신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비선도기업이 선도기업을 이기는 길, 즉 파괴적 혁신에는 얼마나 다양한 유형이 있을까. 이 교수는 단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는 로엔드(low-end·가장 싼 제품) 파괴,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신시장 파괴다.
◆“지속적 혁신· 파괴적 혁신을 모두 갖춰라”
“빨간 실선이 검은 점선보다 낮은 지점에서 출발하는 대신 기울기가 가파르다는 점이 보이실 겁니다. 산업 초창기에는 고객 층도 다양하고, 소비자마다 원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수준을 기업이 못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영자들이 밤잠을 줄여가며 혁신에 혁신을 거듭한 끝에 결국은 역전됩니다. 소비자들이 기업의 혁신을 못 따라는 것이죠. 여기서 초과 만족된 소비자가 나타납니다. 첫 번째 파괴적 혁신인 로엔드 파괴는 이 초과 만족된 고객을 공략하는 겁니다.”
초과 만족된 소비자는 어떤 산업이든 성숙기에 접어들면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경영자는 자기 회사의 사업이 초창기라고 판단되면 일반적인 의미의 혁신, 즉 지속적 혁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성숙기에 들어가면 파괴적 혁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과 만족된 소비자가 나타나는 것은 로엔드 파괴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초과 만족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족시킬까요. 제품 성능에 대해선 이미 만족을 느낀 소비자들입니다. 더 좋은 제품을 주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가격입니다.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서 가격을 내려야 합니다.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고, 해외에 공장을 짓고 하는 행동들은 모두 가격을 낮추려는 행동이죠. 말은 간단하지만 실현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 비용 절감입니다. 이것만 성공하면 비선도기업이 단숨에 선도기업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신시장 파괴는 ‘로엔드 파괴’와 타깃이 다르다. 초과 만족 소비자가 아니라 비(非)소비자를 겨냥하는 것이다. 선도기업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불만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이 신시장 파괴 전략의 고객들이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에는 온갖 기능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기능은 이런 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고객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런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신시장 파괴입니다. 아예 다른 기능을 갖춘 제품을 내놓는 것이죠.”
◆“선도기업이 무시하는 시장을 공략하라”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경영전문석사(MBA) 학위를 딴 다음 네 번의 창업을 하고, 41세 때 모교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다. 이 때문에 ‘경영 현실을 잘 아는 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MBA 수업에서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부분을 가장 강조한다고 한다.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다 보면 선도기업을 뛰어넘고 싶어진다. 그때 전략이 그 선도기업의 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시장과 소비자를 공략하는 것이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선도기업이기 때문이다. 정말 선도기업을 이기고 싶다면 그 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장, 가장 불확실하게 생각하는 시장을 노려야 한다.”
이 교수는 선도기업과의 경쟁을 고대 전쟁에서 100m가 넘는 언덕에 자리잡고 화살과 바위 등으로 중무장한 적의 요새를 상대하는 것에 비유했다.
“이런 적을 상대하려면 무기가 있어야겠죠. ‘동기(動機) 불균형의 방패’가 필요합니다. 같은 시장, 같은 제품으로 공격해선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선도기업과 같은 동기를 갖고서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전혀 다른 동기를 갖고 공격해야 합니다. 그것이 파괴적 혁신입니다. 역사적으로 비선도기업에 무너졌던 모든 선도기업은 로엔드 시장이나 신시장 공략에 나선 후발주자들을 무시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무시한 것처럼 말이죠. 선도기업은 잘되는 시장에서만 싸우려고 합니다. 돈이 안 되는 로엔드 시장이나 신시장은 아예 가려고 하질 않아요. 하지만 무시받던 후발주자들이 선도기업의 고객들을 다 빼앗아 갑니다.”
◆“파괴적 혁신을 교두보로 삼아라”
파괴적 혁신만으로 곧바로 선도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파괴적 혁신을 교두보로 삼아 지속적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마진이 남지 않는 시장이나 새로운 시장은 선도기업의 견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장에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선도기업이 무시하는 시간이 10년이 되고 20년이 되면, 파괴적 혁신 기업들이 몰라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GM을 이긴 도요타입니다.”
도요타는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쇼크를 틈타 저가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GM은 쉐보레부터 올즈모빌, 뷰익, 캐딜락 순서로 저가에서 고가로 분포한 자동차 라인을 구축하고 있었다. 도요타는 저가 라인인 쉐보레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GM은 마진이 얼마 남지 않는 쉐보레가 공격당하는 것을 무시하고 캐딜락에 집중했다. 그러자 도요타는 캠리를 만들어서 올즈모빌을 공격했다. 조금 지나선 렉서스를 만들어 고급차 시장까지 점령했다. 파괴적 혁신 기업이 지속적 혁신 기업이 된 것이다.
“여러분 기업이 비선도기업이라면 파괴적 혁신을 찾아야 합니다. 선도기업이라면 절대 무시하거나 도망가선 안 됩니다. 많은 경영자들이 로엔드 시장이나 신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면 발을 빼는데, 오히려 고마워하면서 도망갑니다. 수익성이 높은 시장으로 도망가면서 실적도 좋아지고 제품 성능도 더 좋아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게 만족하는 하루하루가 회사의 무덤이 되는 겁니다.”
◆“파괴적 혁신 위한 독립 조직을 만들어라”
이 교수는 이어 ‘RPV 이론’을 소개했다. R은 자원(resource), P는 프로세스(process), V는 가치(value)다. 자원은 기업이 사고팔거나 이용할 수 있는 물건 또는 자산이고, 프로세스는 기업이 자원을 제품이나 서비스로 바꾸기 위해 정한 방식이다. 가치는 제품과 프로세스를 경영에 투입하는 과정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는 기준이다.
“자원에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한곳에서 일하던 인적 자원을 다른 곳에 배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프로세스는 유연성이 없습니다. 지속적 혁신을 하는 경영자들의 가치와 파괴적 혁신을 하는 경영자들의 가치는 완전히 다릅니다.”
IBM은 1970년대부터 컴퓨터 산업의 선도기업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대형 컴퓨터 중심 시장에서 미니컴퓨터가 등장하자 IBM을 뺀 모든 대형컴퓨터 기업들이 사라졌다. IBM은 미니컴퓨터를 출시한 덕에 살아남았다. 그 다음 PC가 나오자 미니컴퓨터 회사들이 다 사라졌지만 PC를 했던 IBM은 또다시 살아남았다.
“IBM은 본사에서 파괴적 혁신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는 회사를 계속 만들었습니다. 본사 임원들은 우선순위를 수익에 두기 때문에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조직은 조직 스스로를 파괴할 수가 없습니다. 독립된 조직을 만드십시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이호욱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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