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로션은 기본 … 비비크림·컨실러까지…多기능에 발라도 티 안나는 제품 선호
화장품에 눈뜨는 군대생활
외모만큼은 민간인처럼 유지하고파…군인 전용 '사제 위장크림' 히트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스킨이나 로션 이외의 다른 남성 화장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요즘은 기본 화장품으로 취급받는 에센스, 수분크림, 거품 세안제, 자외선 차단제, 마스크팩 등도 거의 쓰이지 않았다. 잡티를 감춰주는 비비크림, 여드름 자국을 가려주는 컨실러, 눈화장용 아이라이너 등 수십 가지의 남성 화장품이 화장품 매장의 한켠을 차지할 것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한국남자 의외로 깐깐하다
한국 남자들은 이제 화장품 매장에 자연스럽게 출입한다. 직접 상담을 받고 샘플을 써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남성 화장품 구매고객 중 60%는 본인이 직접 제품을 고른다. 10년 전엔 10%만 직접 구매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성 화장품보다 남성 화장품을 개발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한다. LG생활건강 ‘보닌’의 손휘주 대리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훨씬 깐깐하다”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 ‘발라도 티가 안 나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비비크림은 잡티는 말끔히 가리되 너무 하얗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여러 종류를 바르기보다는 3~4개 기능을 하나에 담은 다기능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동욱 롯데백화점 화장품담당 상품기획자(MD)는 “화장품에 익숙한 사람들은 ‘OO성분이 든 제품은 내 피부에 맞지 않으니 빼고 추천해 달라’는 식으로 질문부터 다르다”고 전했다. 남윤우 아모레퍼시픽 미용연구팀장은 “미국이나 유럽 남성은 면도 후 애프터셰이브스킨 정도만 바르지만 한국 남자는 피부색과 잡티를 고민한다”며 “최고급 브랜드로 자기 만족을 누리려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군대에서 화장품에 눈뜨다
의외로 많은 남성이 군 복무 중에 화장품에 대해 눈을 뜬다고 화장품업계에선 분석했다. 자외선을 많이 쬐기 때문에 피부가 상하는 것을 쉽게 경험한다. 강원지역에서 복무 중인 P중위(28)는 “병사들은 전역 이후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고, 밖에서 열심히 스펙을 쌓고 있을 사람들에게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며 “뭔가 체계적으로 준비할 여건은 안 되다 보니 피부나 근육 같은 외모 관리에 집중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히트상품으로 주목받은 군인 전용 ‘사제 위장크림’은 외모만은 민간인처럼 유지하길 원하는 요즘 군인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고든 성공작으로 꼽힌다. 국내 백화점에서 매출 1~2위를 다투는 수입 남성 화장품인 ‘랩시리즈’와 ‘비오템 옴므’는 군인 전용 멤버십을 만들어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 남성들에게 피부관리법을 강의하는 강좌도 20~30대 남성들로 꽉 찬다. 화장품업체들은 전문 강사가 피부 세안 같은 기초 지식부터 기능성 화장품의 효과적인 사용법 등을 알려주는 강좌를 잇달아 개설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의 산물”
직장인 박민수 씨(48)는 화장품을 바른 지 2년 됐다. 나이 먹은 티가 나는 게 싫어서다. 고참 부장으로 임원 승진할 때가 됐는데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는 주변의 충고도 솔깃했다. 가끔 부인과 함께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이고 피부관리도 한다.
가부장적 보수성이 강한 문화 속에서 자란 한국 남성들이 이처럼 화장품에 친숙해진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배경에 ‘치열한 생존 경쟁’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시장 성장세에 불이 붙은 시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약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진 때다. 김혜균 우송대 뷰티디자인학과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남녀 관계가 동등하게 변했다”며 “남성이 자신의 권위나 힘만 과시해서는 안 되고 여성친화적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투박함보다는 세련된 것을 더 멋진 것으로 여기는 시대기 때문에 외모가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임현우/강진규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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