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자성어…네 글자 속에 담긴 세상의 이치

입력 2013-05-02 17:10   수정 2013-05-02 21:45

구우일모·토사구팽…사마천 사기에 실려
사유체계 담은 115개 성어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

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김영수 지음 / 생각연구소 / 544쪽 / 1만8000원




구우일모(九牛一毛), 곡학아세(曲學阿世), 다다익선(多多益善), 토사구팽(兎死狗烹) 등의 잘 알려진 고사성어 중 상당수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나왔다. 《사기》에 나오는 사자성어만 해도 600개에 이르고 명언이나 격언을 더하면 1200항목에 달한다.

《사기》라는 단일 콘텐츠를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하고 재해석해온 대표적인 《사기》 전문가 김영수 씨는 고사성어를 “인간의 심리와 사유체계를 담고 있는 하나의 문화 코드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약 2000년 전에 쓰인 이 책이 지금까지도 시공을 초월해 세상사 이치를 알려주는 고전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사마천학회의 정식 회원인 그가 《사기》에 나오는 고사를 소개하고 현대적 의미를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생사(生死):어떻게 죽을 것인가’ ‘관조(觀照):이성과 감성의 조화’ ‘승부(勝負):승부는 책임을 동반한다’ 등의 주제로 7장을 구성해 사기의 고사에서 유래한 115개의 사자성어와 격언을 설명한다. 익숙한 사자성어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현대적 의미로 번역해 들려준다.

월나라의 공신 범려는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물리친 뒤 너무 커진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해 권력에서 물러나려 한다. 구천이 나라의 반을 나눠줄 테니 떠나지 말라고 붙잡았지만 범려는 가벼운 짐을 챙겨 배를 타고 제나라로 떠나버린다.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던 범려는 해변에서 농사를 잘 지어 많은 재산을 모은다. 이에 또다시 범려의 명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제나라에서는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범려는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집안에서는 천금의 재산을 이뤘고 벼슬로는 재상에 이르렀으니 보통 사람으로는 가장 높은 곳까지 간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귀한 이름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상서롭지 못하다(구수존명불상·久受尊名不祥).’

‘구수존명불상’이라는 격언은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범려는 월나라를 떠나기 전에도 또 다른 공신 문종에게 ‘토사구팽’을 설명하며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문종은 설마 하며 망설였고, 월왕 구천은 후에 결국 문종을 죽인다. 저자는 이 고사를 소개하며 “‘성공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성공불거·成功不居)’는 장량의 충고가 귓가를 때린다”고 덧붙인다.

순우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제나라 위왕이 순우곤에게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그는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합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왕께서 술을 내리시면 관원들이 옆에 있어 두렵고 엎드려 마셔야 하니 한 말도 못 마시고 취합니다. 하지만 깊은 밤에 자리를 좁혀 남녀가 동석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배반낭자·杯盤狼藉) 마루 위의 촛불이 꺼진 뒤, 엷은 비단 속옷의 옷깃이 열리면 은은한 향기에 한 섬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이 도가 지나치면 어지럽고(주극생난·酒極生亂), 즐거움이 도가 지나치면 슬퍼집니다(낙극생비·樂極生悲).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사물이란 도가 지나치면 안 되며, 도가 지나치면 쇠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나라 위왕은 순우곤의 말을 들은 후 밤새워 술 마시는 습관을 버렸고 왕실의 술자리 때마다 순우곤을 옆에 두고 조언하게 했다. 피가 많이 흘러 어지러운 상태를 ‘유혈이 낭자하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 나오는 ‘배반낭자’에서 비롯된 말인데, ‘낭자’란 이리 떼가 풀 더미 위에서 잠을 잔 다음 풀을 마구 흩뜨려 잠잔 흔적을 없앴다는 얘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저자는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빈계지신, 유가지색·牝鷄之晨, 惟家之索)’는 격언의 누명도 벗겨준다. 은나라 때의 폭군인 주 임금이 애첩에 빠져 나라를 그르치자 실정을 꾸짖기 위해 쓰였던 이 말이 후대 정통주의 유학자들에 의해 왜곡됐다는 것이다. ‘일어나야 할 땐 박차고 일어나라’ ‘노려만 보지 말고 꾸짖고 포용하라’ ‘판단력은 탐욕과 반비례한다’ 등 원전의 고사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가 보석 같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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