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도 '대기업 증세' 내세운 야당에 밀려
세수증대 2000억 불과…투자심리만 위축
“이럴 거면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뭐 하러 하겠다는 겁니까.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국정목표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 아닙니까.”
기획재정부가 3일 대기업에 한해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율을 1%포인트 인하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데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20조원에 가까운 혈세를 쏟아붓겠다면서 정작 일자리 창출에는 역행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아무리 다급해도…
발단은 추경 예산 심사를 놓고 야당이 대기업-부자 증세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면서였다. 정부와 여당은 “증세는 없다”는 원칙을 내세웠고 야당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여야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오는 6일까지 반드시 추경안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하는 정부는 다급해졌다. 그래서 꺼내 든 카드가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율 인하였다. 대기업을 상대로 2000억원의 증세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최저한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야당이 고집하자 전날 저녁 기재부가 이 같은 절충안을 가져왔다”며 “추경 심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다급함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에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방향이 잘못됐다는 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이날 기재부가 발표한 내용은 내년부터 대기업에 대한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 가운데 기본공제율을 1%포인트씩 인하하겠다는 것.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는 기업이 고용을 유지할 때 적용되는 기본공제, 고용을 늘릴 때 부가되는 추가공제로 이뤄진다. 기본공제율은 대기업의 경우 설비투자액의 2%(수도권 내), 3%(수도권 밖)였는데, 이를 내년 귀속분부터 1%, 2%로 낮추기로 했다. 중소기업은 현행대로 4%의 기본공제율을 유지한다.
추가공제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3%(공제 한도는 고용증가인원×1000만~2000만원)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기본공제와 합치면 대기업은 4~5%까지 공제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7%까지 가능해 혜택의 격차가 커진다.
예를 들어 수도권 밖 대기업이 1조원을 투자하면서 청년 근로자 1000명을 더 채용했을 때 종전에는 기본공제 300억원(1조원×공제율 3%)에 추가공제 150억원(1500만원×1000명)을 더해 450억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기본공제율이 1%포인트 낮아지면서 기본공제액이 200억원(1조원×2%)으로 줄어든다. 추가공제를 합해도 총 공제액은 350억원이 된다.
○규제 완화와 엇박자
기재부는 추가공제와 달리 기본공제는 고용 창출 효과가 작다고 설명한다. 추가공제는 인원을 늘린 만큼 혜택을 주지만 기본공제는 고용을 줄이지만 않으면 투자금액의 일정 비율을 일괄적으로 공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고용을 유지해야 할 인센티브 자체가 줄어든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을 국정과제의 핵심으로 삼은 정부가 자기 모순에 빠진 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최근 며칠간 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를 외쳐온 정부가 투자심리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이 강하다. 정부는 지난 1일 각종 규제를 개선, 12조원 이상의 투자 확충 효과를 일으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게다가 정부가 그동안 ‘기업 투자 의욕이 꺾일 수 있다’며 증세를 반대해온 점을 떠올려보면 정책의 일관성까지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율을 직접 고친 게 아니라 비과세·감면 축소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의 ‘증세’란 평가가 우세하다.
김유미/김우섭/추가영 기자 warmfront@hankyung.com
■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하면서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렸을 때, 원래 내야 할 법인세를 인하해주는(세액공제) 제도. 설비 투자 과정에서 일자리를 유지하면 투자액의 1~4%까지 기본적으로 깎아주고(기본공제), 일자리를 늘리면 늘린 인원만큼 더 깎아준다(추가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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