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숭례문 (崇禮門)

입력 2013-05-03 17:40   수정 2013-05-03 23:29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파리를 상징하는 개선문 전망대에 서면 옛 제국의 수도 파리 전경이 일망무제로 들어온다. 계단으로 50m 높이를 오르긴 만만찮지만 야트막한 지붕들을 사통팔달로 내려다보는 맛이 일품이다. 엘리베이터로 후다닥 올라가는 에펠탑의 조망과도 사뭇 다르다. 나폴레옹이 전승 기념물로 세운 이 웅장한 건축 예술물 아래로 드골이 당당하게 행진하는 모습에 프랑스인들은 환호했을 것이다. 1945년, 4년간 독일 치하에서 벗어나 프랑스가 재탄생하고 레지스탕스 영웅 드골이 대중정치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대 로마의 것에서부터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전쟁영웅들은 개선문을 통과해 권좌로 나아갔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권위의 장소였고 극대화된 정치 공간이었다. 청년시절 미술가냐, 건축가냐로 진로를 고민했던 히틀러가 ‘건축은 시대정신’이라며 거대 대중동원 시설에 집착을 보였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베이징 톈안먼(天安門)도 황제와 제국의 권위 그 자체였다. 자금성의 상징, 톈안먼을 지나 황제가 출병의식을 하고, 조서를 반포했다는 오문을 거쳐 태화문 등을 거치면 자금성 뒤쪽은 지안문이다. 이 대문들은 단순히 성곽시설만은 아니었다. 청(淸)의 국가이념과 시대정신이 응축된 통치 공간이었다. 그래서 청은 자금성 문에 안(安)과 화(和)를 강조한 이름들을 내걸었다. 천자 체제에 온 천하가 평안하고, 그 덕에 이민족들까지 오로지 화합하라는 계시요, 압박이었다.

문이 정치 권위의 상징물이자 국가적 염원의 발로였던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유교의 나라 조선을 세운 정도전이 새 수도 한양에 성을 쌓으며 먼저 한 일이 유학이념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었다. 예를 숭상하며(崇禮門), 인을 흥하게 하고(興仁門), 의를 돈독하게 하면서(敦義門), 지혜를 넓히는(弘智門) 것을 국가운영의 기반으로 삼겠다며 신도시를 건설했다. 도성의 동서남북 대문을 그렇게 이름 지어 온 백성을 일상으로 계몽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정치철학을 새기고 도의를 새겨넣은 이름을 남대문, 동대문이라며 격을 확 낮춰버린 건 일제였다. 저들의 역사왜곡은 그 시절 제국주의 때부터 비롯된 고질이었다.

왜란, 호란, 동족 상잔까지 이겨냈던 국보 1호 숭례문이 화마를 딛고 5년2개월 만에 오늘 우리 앞에 다시 우뚝 섰다. 덜 탄 목재 6만27점에다 태백준령의 금강송 등 목재만도 15만1369재(才)가 새로 들어갔다. MB정부 말기 때 복구 기념식을 치를 수도 있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새 대통령에게 넘기자’고 해 준공을 늦췄다고 한다. 폼나는 행사라면 자다가도 뛰어가는 정치인의 습성, 투쟁이 능사인 각박한 한국 정치문화에서 겸양의 예를 보게 된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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