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초 긍정성을 타고난 나이지만 한 번씩 ‘비교’라는 그 분이 찾아오면 도대체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을 친다.
그 날도 역시 그랬다.
가까운 지인이 요즘 잘 나가는 강사라며 한 강사의 강의 파일을 보내왔다.
들어보니 말을 참 재미있게 잘했다.
‘재미있네!’ 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갑자기 스물스물 비교의 그분이 다가왔다.
강사의 이력을 찾고, 다른 유명 강사 강의 파일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는 과정 속에서 나의 자존감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곤두박질을 쳤다.
자가 치유 능력이 뛰어나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금방 회복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강력했다. 쉽사리 스스로 치유가 되지 않아 우울함이 제법 오래갔다.
스스로 치유가 안 되면 타인을 통해 치유를 해야 한다.
그 타인은 나를 잘 알고 있으며, 나를 다시 붐업시켜줄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이 있어야 한다.
나를 치유해 줄 타인으로 남편이 제격이긴 한데 요즘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관계로 친 오빠를 택했다.
“내 장점 10개만 적어봐” 하며 카톡으로 보내자 “갑자기 뭔 소리야?” 하며 황당하다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우울하고 자존감이 떨어져서 말이야”
그제서야 눈치 챈 오빠는 카톡으로 번호를 붙여가며 나의 장점들을 보내왔다. 총 11개.
장점 목록에는 동생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려고 심혈을 기울인 오빠의 노력이 배어 있었다.
약간은 과장이 묻어나긴 했지만 장점 목록들을 물끄러미 바로 보고 있노라니 내가 참 잘하는 것도 많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칭찬하고 응원할 때와는 다른 묘한 쾌감이 일었다.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그래! 내가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 서서히 자존감과 자신감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늘 가지고 다니는 나의 장점 리스트에 오빠가 보내 온 내용을 추가하자 방전된 밧데리에 가득 충전된 느낌이었다.
내 휴대폰 메모장에는 남편의 장점 62개와 내 장점 50개가 적혀 있으며 계속 업데이트 중이다. 올해까지 남편 장점과 내 장점 각각 100개 채우는 데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장점 리스트는 참 유용하다.
지치고 피곤할 때 상큼한 레몬차나 비타민을 먹으면 힘이 나는 것처럼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질 때 보면 자신감이 되살아난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힘들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면 내가 적어놓은 남편의 장점 리스트를 보며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시킨다.
지난해 남편은 내가 적어놓은 장점 리스트를 읽으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며 흐뭇해하더니 그 뒤로 힘들 때면 한 번씩 꺼내보며 자가 치유를 하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단점은 잘 알면서 장점은 모를뿐더러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기를 낮추려는 지나친 겸손이 자기애마저 떨어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먼저 인정하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우울’ ‘자괴감’ ‘자신감 상실’ 등을 예방하고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나의 장점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 또는 아내를 위한 장점 리스트를 만들어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가 치유가 안돼서 괴로워하고 있는 배우자에게 보약을 안겨주는 것보다 더 강력한 원기회복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수연 < 한국워킹맘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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