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히든챔피언…인력 5~10% 실업학교 학생
입사 후 만족도 높아 100명 들어오면 2명 미만 이직…청년 실업률 낮아지고 탄탄한 기술력의 배경
한국도 교육제도 혁신 필요
곡식과 식품 가공기계를 생산하는 뷸러(Buehler)의 조립 공정에서 한 여직원이 기계에 전압 장치를 넣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옆 동에서는 용접 불꽃 사이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지난달 3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우츠빌이란 작은 마을에 자리잡은 뷸러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은 즐거워 보였다. 지방에 본사를 둔 이 회사 직원들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보리의 75%, 쌀의 15%가 뷸러 기계로 가공된다. 뷸러 기계로 만들어지는 초콜릿 및 파스타의 비중도 각각 65%, 40%다. 뷸러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마크 슈워츠 판매담당 부장은 “히든챔피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사람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 뷸러의 경영철학”이라고 강조했다.
1860년 우츠빌에서 직원 2명의 주물가게로 시작한 뷸러는 150년 동안 사세를 키우며 연매출 20억유로(약 2조9000억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전 세계 140개국에 생산공장이나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성장을 위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맨파워’다. 뷸러 직원 1만명 중 550명은 실업학교에 다니면서 일을 배우는 견습생이다. 이날도 뷸러의 공장 한쪽에서는 커다란 공구를 든 2명의 견습생이 구슬땀을 흘리며 실습하고 있었다. 이들은 처음 1년 동안에는 매월 30만원, 다음 3년은 매월 8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한상은 KOTRA 뮌헨무역관장은 “보통 견습생은 생산공정에 3~4년 투입돼 배우는 만큼 입사 후 재교육 과정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며 “히든챔피언이 많은 독일어권 국가의 청년실업률이 낮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뷸러의 금속판을 자르는 공정에서는 절단기계에 ‘Trumatic L4050’이라는 라벨이 붙은 레이저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히든챔피언인 트룸프(Trumpf)가 만든 기계다. 독일 디칭엔에 본사를 둔 트룸프는 90년 전 설립된 납 절단기 제작 전문업체다. 현재는 산업용 레이저와 공작기계, 의료기기 등을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23억유로(약 3조3000억원)를 올린 이 회사는 26개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매년 10% 성장과 차입 최소화, 품질 1위를 경영 목표로 삼고 있는 트룸프도 인력을 가장 큰 자산으로 꼽는다. 전체 9555명 임직원 중 6~10%는 견습생이다. 견습생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다 마이스터(장인) 자격증을 취득해 돌아오기도 한다. 견습제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서보성 일성테크 부사장은 “국내에선 대졸자를 채용해 1년 넘게 현장 교육을 시켜 제대로 일 좀 하는가 싶으면 떠나는 이들이 많다”며 “지방 분권화가 확실한 독일과 달리 서울과 지방 간 인력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견습생을 거치며 공정을 구석구석 배우다 보니 입사 후 취업자들의 만족도가 대체로 높은 편이다. 평균 이직률이 2% 미만으로 낮은 이유다. 낮은 이직률은 탄탄한 기술력으로 이어져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게 된다. 독일 민델하임에서 공작기계를 제조하는 그로브(Grob)의 알프레드 뢰를 생산담당 부장은 현장교육 전문가다. 그는 “매년 55명 정도씩 뽑아 왔다”며 “그간 가르친 1900명의 견습생 중 1000여명이 지금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그로브의 직원은 4200명이다. 전체 직원의 25%가량이 견습생 출신인 셈이다. 이곳에서 견습과정을 거치면 상공회의소에도 등록돼 설계, 기계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유럽 히든챔피언 기업에서는 고용 인력의 5~10%가량이 실업학교 학생들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과 달리 독일어권 국가들의 대학 진학률은 30% 남짓이다. 나머지는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전문 기술을 배운다.
김평희 KOTRA 글로벌연수원 원장은 “히든챔피언들과 같은 인력을 확보하려면 필요한 것이 시스템과 사람인데 이는 결국 교육”이라며 “교육제도 전반의 혁신, 기술인력에 대한 인식 전환 없이는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우츠빌, 독일 디칭엔=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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