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위에서도 3년은 버틴다
여행사 차리고 6개월 손님 없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책 읽고 견뎌내
여행업계서 남다른 길 개척
日 최초 저가 해외 여행상품 내놓고 1등석 항공권도 파격적 '반값 할인'
18년 적자 테마파크 살리다
입장료 낮추고 이색적 꽃 축제…하우스텐보스 관광명소 '탈바꿈'
“여행은 곧 비즈니스다. 여행과 비즈니스는 모두 인생을 건 모험이니까.”
JTB그룹에 이어 일본 여행레저업계 2위인 HIS그룹의 사와다 히데오 회장(62)에게 여행은 곧 삶 그 자체이자 재력의 원천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난부 야스유키 파소다그룹 회장과 더불어 ‘일본 벤처 3총사’로 꼽히는 사와다 회장은 자신의 평생 취미인 여행을 비즈니스로 승화시킨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 사정에 맞게 세상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것이 그의 여행 철학이자 경영 원칙이다.
○여행에 미친 남자, 여행사 사장이 되다
195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사와다 회장의 집안은 마을에서 큰 과자점을 운영하며 꽤 부유하게 살았다. 사와다 회장은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부모의 요구를 거절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3년 독일 마인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학 열풍이 불었던 당시 독일을 유학지로 택한 건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며 갇혀 지내고 싶지 않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사와다 회장은 유학 시절 그의 표현대로 ‘여행에 미쳐’ 살았다. 4년간의 유학 중 그의 발길이 미친 곳은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50여개국에 이른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가이드로 나섰다. 유창한 독일어 실력과 자신이 쌓은 여행정보를 이용, 일본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많게는 한 달에 100만엔까지 벌었을 정도로 수입이 쏠쏠했다. 여행 경비와 생활비로 쓰고 남은 돈은 부지런히 저축했다. “여행으로 돈도 벌고,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사와다 회장은 일본으로 돌아온 뒤 주식 투자와 모피 장사로 여행사 창업을 위한 종잣돈을 모았다. 그리고 1980년 도쿄 신주쿠의 작은 사무실 한 칸을 빌려 ‘인터내셔널 투어스’라는 소규모 여행사를 차렸다.
첫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창업 후 6개월 동안 손님 한 명 없이 파리만 날렸다. 사와다 회장은 2010년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업 초기에 대해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고, 하루하루가 불안했다”고 회상했다. 또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보니 개인 시간만 많아져 책읽기에 빠져 지냈다”며 “차가운 돌 위에서라도 3년은 있어봐야 한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격언이 큰 힘을 줬다”고 말했다.
○일본 최초의 저가 해외 여행상품 출시
사와다 회장의 여행사는 인도 자유여행 상품이 20~30대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서서히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할인 항공권과 중·저가 호텔 숙박을 결합해 기존 패키지여행보다 비용을 50~60% 절감하고,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담은 여행안내 소책자를 자체 제작했다. 50여개국을 돌아다닌 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된 상품인 만큼 호응이 높았다. 더욱이 저가 여행상품이 나온 건 일본 관광업계 최초였다. 인도 자유여행 상품은 출시하자마자 잇따라 예약이 꽉 차며 속칭 ‘대박’을 쳤다.
사와다 회장은 1990년 여행사 이름을 지금의 HIS로 바꾸고, 자유여행 및 단체관광 상품의 범위를 아시아권에서 유럽, 중동 등으로 넓혔다. 1993년엔 신주쿠에 3560㎡(약 1077평)짜리 대형 사무실을 차렸다. 창업 15년 만인 1995년에는 HIS를 도쿄 증시에 상장시켰다.
사와다 회장은 보다 큰 도전장을 내밀었다. 1996년 일본 최초의 저가 항공회사 스카이마크를 창업했다. 일본 국내선 전용 항공사인 스카이마크는 1등석 표 가격을 최대 60% 싸게 판매하는 파격적인 마케팅을 실시, 일본 항공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1등석은 할인 대상이 아니다’던 당시 일본 항공사들의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이었다. 스카이마크는 2003년 유상증자를 한 뒤 니시쿠바 신이치 현 스카이마크 사장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사와다 회장의 손을 떠났지만,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로 자리잡았다.
사와다 회장의 경영능력 진가는 2003년 일본 남부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를 인수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하우스텐보스는 1992년 나가사키현에서 2200억엔을 들여 건설한 대형 테마파크다. 하우스텐보스는 도쿄 디즈니랜드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부지에 네덜란드 거리를 아기자기하게 재현, 개장 당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경제가 오랜 불황에 접어들면서 하우스텐보스는 개장 이후 18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우스텐보스 측은 2010년 사와다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와다 회장은 그 해 하우스텐보스 사장으로 취임한 뒤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입장료부터 20% 낮췄다. 또 HIS를 통해 하우스텐보스를 중심으로 한 여행상품을 만들어 해외 관광객들을 끌어모았다. 아울러 뮤지컬과 퍼레이드 등 각종 이벤트를 벌였다. 특히 ‘튤립 축제’와 ‘100만송이 장미 축제’는 하우스텐보스를 이국적인 꽃의 왕국 이미지로 탈바꿈시켰다.
사와다 회장은 지금도 매달 절반 정도를 하우스텐보스에서 보낸다. 그는 “테마파크 운영은 스피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여행사 영업과 매우 닮았다”며 “고객의 지적사항을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사와다 회장이 이끄는 HIS그룹은 산하에 HIS여행사와 비즈니스 호텔체인인 워터마크호텔, 하우스텐보스, 여행보험사 등 4개 사업부문 10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전체 직원은 1만780명에 달한다. 지난해 HIS그룹 매출은 전년보다 13.3% 증가한 4315억엔, 순이익은 12.4% 늘어난 93억엔을 기록했다.
○직원들에게 ‘긍정의 힘’ 전파
사와다 회장이 평소 자주 하는 말은 “아무리 어두운 상황에서도 밝게 웃고, 긍정적인 말을 계속하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 시작 후 30여년 동안 단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았다. “경영자 본인이 불성실하면 어느 직원이 따르겠느냐”는 지론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긍정과 열정, 빠른 판단력을 갖추라고 강조한다. 야근도 권장하지 않는다. 근무 시간 내의 업무 능률을 올리면 잔업이 필요없고, 그만큼 비용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미루지 않는 사내 분위기 때문에 단위시간당 업무 강도가 상당히 센 편이지만, 직원들의 불만은 별로 없다. 탄력근무제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와다 회장은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 직원들에 대한 복지 제도를 중시한다. HIS그룹에선 ‘마마 초이스(mama choice: 엄마의 선택)’ 제도를 도입했다.
자녀가 있는 여직원은 풀타임과 파트타임 근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시간당 급여는 똑같다. 육아휴직 기간은 기본 1년이지만, 연장이 필요할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2년까지 늘릴 수 있다. 또 ‘이중보육보조’라는 제도를 통해 풀타임 근무자에게 자녀 교육비와 육아도우미 비용 등 육아에 필요한 모든 돈을 회사에서 대주고 있다.
사와다 회장은 “우리 회사 사원 중 절반이 여성인데, 이들의 능력이 아이 문제로 묻혀버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 김동연 일양약품 사장 "10년 번 돈 신약개발 투자…퍼스트 아니라면 베스트 돼야죠"
▶ 조용하게 국제화에 나서는 위안화
▶ 비영리기관, 피터 드러커의 조언 귀 기울일때
▶ 약값 인하압력 완화·내수시장 회복…1분기 저점으로 이익회복 전망
▶ [Next Week 경제·경영 세미나] 5월14일(화) ~ 5월16일(목)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