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내적 욕망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게 도와줘야
김다은 <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 daeun@chugye.ac.kr >
대학 동창이 아들 녀석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대학생 아들은 학교까지 거리가 멀다며 불평을 거듭했고, 긴 실랑이 끝에 독립을 시켰다. 독립 후 집에 잘 오지도 않아서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을 마련해주었지만, 제대로 먹는지 공부는 제대로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도 마지못해 ‘네’라는 대답만 할 뿐 도통 대화를 하지 않는다며 난감해 했다. 대학 동창은 긴 통화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필요한 돈을 주지 않나, 집안 환경이 좋지를 않나,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서 저러는 것 같아.”
전화를 끊고 원두커피 향을 음미하며 이 문제를 숙고해보았다. 주변에 아들 혹은 딸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느끼는 이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해왔기에, 이 문제를 한번 짚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창이 마지막에 남긴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서 저러는 것 같아”라는 문구를 되새기다가 보니, 문득 1998년 프랑스 대입 국가고시 바칼로레아에 출제됐던 한 철학문제가 떠올랐다. 즉,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행복할 수 있는가?’
바칼로레아의 철학문제는 예비 대학생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프랑스 단어 ‘Bonheur’는 ‘좋은(bon)’과 옛 프랑스어의 ‘행운(heur)’에서 나온 것이다. 영어 ‘happiness’도 그 어원이 ‘hap’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회(chance)’를 의미한다. 어원만 따지면 행복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수에 좌지우지되는 것 같지만, 정답은 단어의 어원만을 묻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자신이 행복한지도 모르고 행복한 상태가 되려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데도 저절로 모든 과정이 이뤄져 인간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의지와 상관없이 방귀가 새어나와 몸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과 유사하지만, 이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물론 주관식 문제이니 정해진 정답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보면 해답에 좀 더 근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행복한데 그것을 자각하지 못해서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의 초점은 어머니가 아들이 행복한 상태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대학시절에 비해 환경이나 조건이 훨씬 나아진 아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고, 어머니는 또한 현재 불행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행복이 아들에게 행복은 아니다. 행복이란 나의 의도나 필요가 현실과 부합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어서 어머니나 타인이 규정해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 말 그대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게 급선무다. 음악에 관심이 있어 작곡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을 향해 의사가 되라고 강요한다면 아들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끊임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소모한다고 어머니는 애가 타지만, 어쩌면 그 빈둥거림 속에서 아들은 만들고 싶은 가사나 악보를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눈에 빈둥거림은 아들에게 꿈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창밖 오월의 자연을 바라보니 빛나는 초록이나 노래하는 새들이 참 행복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행복을 자각하고 있을까.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왜 행복한 줄 모르니”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행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내가 성취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행동을 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상대방의 행복을 원한다면 그의 내적 욕망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를 기념하는 날들이 많은 달이다. 꽃이나 선물과 함께, 행복을 만날 기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먼저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김다은 <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 daeun@chugye.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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