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분초 다투는 ICT산업, 규제 최소화해 창조경제 앞장"

입력 2013-05-12 16:51   수정 2013-05-13 11:41

오는?17일?취임?한?달?맞는?이경재?방통위원장

공정성 확보 우선…'작지만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매김
미래부와 긴밀히 협력 불합리한 업무 영역 재조정
지상파 재송신 대가 산정, 혁명적 해법 내놓을 것




“이번 MBC 사장 선임 과정에서 ‘낙하산이다’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입했다’는 등의 말들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엊그제 한 방송사 이사장을 만났을 때도 사내 간부 인사에 대해 ‘철저하게 자체 내부 인사 원칙에 따라 하라’고 얘기했어요. 정치적으로 방통위가 문제되고 있는 것은 공정성인데 제가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봐 주세요.”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요즘 ‘공정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국회 인사청문회의 ‘대통령 측근 논란’을 뚫고 지난달 17일 취임한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방송의 공정성’을 강조해왔다. 정부 조직 개편으로 새롭게 태어난 방통위가 첫 번째 정책 목표로 삼은 것도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정한 방송 구현’이다.

지난 10일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여러 현안에 대해 거침 없이 소신을 밝히고 ‘공정성’ 이슈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민감한 대목에서는 말을 아꼈다. ‘4선 의원’ 출신으로 방송통신 분야의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 자신감과 노련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오는 17일이면 취임 한 달을 맞는데요.

“청문회에서 혹독한 시험을 치르고 우여곡절 끝에 임명된 뒤 대통령 업무보고부터 미래창조과학부와 양해각서(MOU) 체결,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죠. 공보처 차관 때 방송을 담당하며 케이블TV 시대를 열었고, 18대 국회에서 방송통신 상임위원을 맡았기 때문에 업무는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새로운 곳에 왔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방통위의 주요 임무는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을 확보하고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규제로 인해 융합 산업이 발목 잡히지 않도록 잘 도와주는 것이죠. 방통위는 ‘작지만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텔레파시로 통한다”는 청문회 답변이 화제가 됐습니다. 위원장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만.

“‘대통령과 가깝다’ ‘캠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정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대통령 측근이 그랬으니 저도 그럴 것이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죠. 중요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철학과 의지예요. 대통령께서도 ‘방송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해서도 안 된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젊은 시절 해직기자의 아픔을 겪었고, 정권을 비판한 책이 판매금지당하기도 했습니다. 텔레파시는 제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한다는 점에서 쓴 말입니다. 전파를 담당하는 방통위원장으로서 적절한 표현 아닙니까. 하하.”

▷미래부와의 업무 중복과 혼선 우려도 많습니다.

“미래부와 업무를 나누는 과정에서 경계선이 모호해진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부로 더 넘겨야 할 업무도 있고 우리가 다뤄야 할 것인데 그쪽에 가 있는 업무도 있습니다. 방송의 본질과 상관 없이 기술적으로 구분한 것도 불합리하죠. 똑같은 TV 화면에서 나오는데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 드라마는 우리가 다루고, 전문편성채널 드라마는 미래부 담당이잖아요. 지상파 드라마가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는 것은 어디서 다뤄야 하나요. 어려운 문제예요. 양측이 다시 나눌 건 나누고, 협업할 것은 협업하는 등 조율할 게 많아서 업무 협력 MOU를 체결한 거죠.”

▷국회 업무보고에서 MOU와 관련해 국회가 합의한 내용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는데요.

“월권하지 말라는 것인데 합의 내용을 지키려고 해도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실무적으로 조율해 법적으로 고칠 것은 당연히 국회에 사전 보고하고 최종 판단도 국회에서 하는 것이죠. 실무적인 협의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도 있고요.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분야에는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있어 계속 정리해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방통위와 미래부 직원들은 오랫동안 한가족으로 일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부처 간 칸막이 제거와 협력의 모범적인 선례가 되도록 해야죠.”

▷새 정부 들어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간 해묵은 재송신 대가 산정 문제가 다시 논의 중입니다.

“케이블 TV 초기에는 SO가 가입자 확대를 위해 지상파를 실어야 했지만 지금은 1500만 가입자를 확보한 상황입니다. 채널이 100~200개로 늘어나 지상파 방송을 내보내지 않아도 과거보다 파장이 작죠. 반면 지상파가 스스로 방송할 수 있는 시청자 수는 전체의 8.9%밖에 안 됩니다. 이른바 갑·을 관계가 바뀐 것이죠. 이처럼 달라진 방송 환경에서 SO의 전송료라는 측면과 지상파의 제작 역량 강화를 위한 저작권료라는 현실적인 측면, 미국과 유럽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기존과 다른 혁명적인 내용이 담길 것입니다.”

▷종편 파행에 대한 지적이 많은데 재승인 심사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습니까.

“이달에 지난해 이행 실적을 점검하고 8월 재승인 심사계획을 마련하겠습니다. 방송법과 과거 지상파 재허가, 보도채널 재승인 사례 등을 참조하고 외부 전문가 심사를 통해 재승인 심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종편 허가 승인 신청 때 제출한 사업계획서 주요 내용의 이행 여부를 충실히 점검하고 이행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유사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통위가 실태조사까지 벌인다면서요.

“전문편성채널이 등록한 전문 영역을 벗어나서 생긴 이슈인데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바둑채널은 바둑 뉴스, 기독교채널도 교계 뉴스를 내보내는데 보도채널이 아니라고 해서 ‘안 된다’고 하지 못하죠. 보도를 단순히 뉴스로 얘기할 게 아닙니다. 방통위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적 공정성입니다. 최종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면 되는데요. 가이드라인을 정하려 하지만 무궁무진한 스펙이 있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연구해야 할 사안입니다.”

▷휴대폰 보조금 시장 과열과 관련해 주도 사업자를 가중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

“방통위 출범 이후 네 번이나 제재했는데도 모든 사업자에게 비슷하게 적용했기 때문에 효과가 적었습니다. 이번엔 주도 사업자를 선별해 본보기로 가중 처벌함으로써 규제의 실효성을 높여 나갈 계획입니다. 예를 들면 과열을 주도한 1개 사업자만 영업정지를 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죠. 위반 횟수와 금액, 기간 등 과열 선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과 구체적인 제재 방안을 상반기 중 결정할 예정입니다.”

▷방송통신 산업 규제를 최소화하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요.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은 분초를 다투며 경쟁하는 분야입니다. 유럽의 방송통신 산업이 미국보다 뒤지고, 일본의 휴대폰 산업이 해외 시장 진출에 실패한 이유는 사전 규제가 강하고 자유 경쟁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인터넷TV(IPTV)를 가장 먼저 개발하고도 제도 미비와 부처 간 영역 다툼으로 뒤처진 아픈 경험이 있어요. 방통위는 미국식 모델을 따라 자유 경쟁과 사후 규제의 원칙을 확립하겠습니다. 방송의 공정성·공공성에 저해되지 않는 한 산업 발전을 막는 규제를 최소화해 창조경제를 구현하고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적극 지원해야죠.”

▷KBS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수차례 얘기했습니다.

“KBS가 광고에 의존해 시청률 경쟁을 하게 되면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지는 등 공공성 확보가 어려워져요. EBS에 지원하는 비율도 2.8%에 불과해 늘릴 필요가 있고요. 하지만 수신료를 인상하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수신료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수신료 결정을 위해 독립된 수신료 산정 기구 설치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다만 국민의 부담과 직결되는 만큼 국회 등 열린 논의의 장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돼야 합니다.

정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만난사람 = 최명수 문화부장

■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누구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72)은 ‘원조 친박(친박근혜)’ 인사로 꼽힌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 때 ‘박근혜 경선 캠프’에서 미디어홍보위원장을 맡았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칩거하던 2009~2011년 친박계의 무게중심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이 위원장은 ‘해직기자’ 출신이다. 인천 강화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동아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하던 중 1980년 5공 출범 당시 비판적인 성향의 기자로 분류돼 해직당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당시 민자당 총재 공보특보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김영삼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공보처 차관 등을 지냈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인천 강화에서 첫 당선된 뒤 18대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다. 국방위·환경노동위·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등에서 활동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당내 ‘현역 물갈이’ 바람 속에 공천에서 탈락했다.

부인 성신자 씨(69)와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삐삐밴드’에서 여성 보컬로 활약했던 이윤정 씨가 차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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