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자 전원 생산라인에 "잘 팔리는 車 만들어야죠"
지난 10일 경기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의장과 조립1팀에서 박효성 씨가 코란도C의 트렁크 문 사이에 고무패킹을 끼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4년간의 무급휴직자 생활을 청산하고 공장으로 복귀한 지 열흘째다. 그는 2009년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벌이며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될 때까지 농성장에 남아 있었던 쌍용차 노동조합원 중 한 명이다. 박씨를 포함한 쌍용차 무급휴직자 455명은 연초 전원 복직 발령을 받았다. 돌연사한 한 명을 제외한 454명이 재교육을 거친 후 지난달 말부터 생산 라인에 투입됐다.
쌍용차는 13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30분까지 3라인 야간 근무를 재개한다. 쌍용차 평택 공장에 밤새 불이 켜지는 것은 4년 만이다.
잠시 휴식시간에 만난 박씨는 피곤한 기색보다는 들뜬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그는 “2001년 비교적 늦은 나이인 스물아홉에 쌍용차에 입사한 13년차”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4년 만에 회사로 돌아온 소감을 묻자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집에 돌아갈 때면 손에 남아 있는 기름 냄새를 맡곤 한다”며 웃었다.
파업 얘기를 꺼내자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는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있는 내 일터는 최루액, 물대포, 새총이 날아다니고 전투경찰들이 들이닥쳤던 아비규환의 모습이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씨는 “2009년 날벼락처럼 2646명의 해고명단이 발표됐을 때 우리는 한순간에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렸다”며 “전체 인원의 30%, 생산직의 절반을 어떻게 한꺼번에 내보낼 수 있는지 당시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파업은 고통스러웠다. 공장에 갇힌 채 농성을 하느라 하나뿐인 딸의 돌잔치에도 가지 못했다. 해고 이후 아내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는 “마냥 기다리는 게 힘들어 7층 베란다에 매달려본 적도 있다”며 “복직을 기다리는 동안 벌초 대행, 호떡장사, 식당 배달, 학원차 운전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옥쇄파업 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혀 다른 곳에 취직하려고 해도 받아주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은 우리를 ‘빨갱이’라고 불렀다”고 기억했다.
공장에 돌아와보니 어떠냐고 묻자 이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4년 만에 돌아온 공장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더군요. 담배꽁초로 지저분하던 바닥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기계들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예전엔 오전 8시30분이 넘어야 한두 명씩 출근했는데 지금은 8시가 되면 다들 나와서 청소하고 공구를 점검합니다.”
그는 “복귀 첫날 집을 나서면서 혹시라도 작업 중에 차가 긁힐까봐 결혼반지와 시계를 모두 뺐다”며 “주변에서 ‘쌍용차 좋다’는 말을 하면 너무 기쁘다”고 웃었다. 박씨는 “지금도 농성 중인 동료들과 희망퇴직자들에게 말하고 싶다”며 “하루종일 공장을 돌려도 손이 모자라도록 잘 팔리는 좋은 차를 만들어서 그들이 일터로 돌아오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재교육 중 기본급만 받던 무급휴직자들은 이달 말부터 정식으로 근로수당을 포함한 월급을 받는다. 박씨는 “월급을 받으면 딸아이 인형을 사주고 아내와 친구들에게 빨간 속옷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쌍용차는 지난달 1만2607대를 팔아 2006년 이후 월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평택=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 장윤정, 부모님 위해 지은 '전원주택' 결국…
▶ 연봉 9400만원 받고도 "상여금 더 올려 줘!" 버럭
▶ 조용필 대박나자 '20억' 손에 쥔 男 누구?
▶ 심이영 과거 사진, 전라 상태로…'경악'
▶ 내 남편, 女직원에 '성적 매력' 느끼더니…충격
[한국경제 구독신청] [온라인 기사구매] [한국경제 모바일 서비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