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시장서 '짝퉁' 생선 뒤지는 보안경찰

입력 2013-05-12 17:51   수정 2013-05-12 23:24

정부 4대악 척결 편승…'사건'보다 '음식물' 단속 쏠림 심각
인사 적체로 승진 경쟁도 한몫



서울의 한 일선경찰서 보안과에 근무하는 A경위. 간첩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검거하거나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게 그가 소속된 보안과의 주 업무다. 하지만 A경위는 요즘 ‘본업’과는 무관한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이뤄지는 생선 등 불법유통 정보를 챙기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온 경찰력이 집중되고 있는 4대악 가운데서도 실적 챙기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불량식품 유통에 대한 정보보고를 윗선에서 지시했기 때문이다.

민생범죄 등 다양한 범죄를 해결해야 할 경찰수사력의 쏠림현상이 심화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학교·성·가정폭력과 불량식품 등 4대악 척결을 주문한 이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4대악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실적 쌓기가 수월한 불량식품 단속에 대부분 일선경찰서 수사력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유통기간이 지난 불량닭, 브라질산닭 불법유통, 중국산 쌀과 소금을 국내산으로 속인 ‘포대갈이’ 일당검거 등 불량식품 단속결과를 일선서에서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기야 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을 잡아야 하는 보안과 직원마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노량진수산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은 지난 3월부터 부문별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기한을 정해놓고 특별단속에 들어가는 ‘채찍’ 외에 이미 성과를 낸 경찰에게 ‘특진’ 등 당근책으로 4대악 척결을 독려하고 있다. 각 지방경찰청에서도 매주 검거상황을 점검하며 실적 경쟁을 유도하고 학부생들인 경찰대조차 서울로 올라와 ‘4대악 콘서트’를 여는 등 과열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4대악 척결을 위해 경찰이 온 힘을 쏟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4대악 가운데 불량식품 단속에 대부분 일선경찰서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것. 형사과에서 주로 다루는 학교·성·가정폭력은 ‘전공’이 다른 타 부서가 쉽게 넘보기 쉽지 않은 데다 실적을 내더라도 범죄발생 건수가 줄어들지 않아 성과가 퇴색될 수 있다. 반면 불량식품은 정보입수가 수월해 보다 쉽게 실적을 올릴 수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전 경찰들이 4대악 근절과 관련한 첩보를 수집하는 분위기인데 불량식품에 대한 수사는 지능적인 부분이 있어 어렵지만, 정보를 얻기는 다소 쉽다”며 “정보 및 보안과 등에서 불량식품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은 이런 범죄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경찰들의 이런 수사쏠림 현상이 본연의 임무를 놓쳐 정말 중요한 사건을 등한시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최근 이성한 경찰청장은 경찰 지휘부 회의에서 “4대악을 제대로 척결하지 못하는 지휘관을 문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청의 강력한 4대악 근절 의지가 오히려 일선경찰서 경찰들을 불량식품 분야 실적 쌓기에 급급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지능수사팀 수사관은 “보이스 피싱이나 대출사기 사건도 넘쳐나는데도 관할 내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4대악 척결이 사회적인 분위기라서 모든 경찰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지 이 분야에 우리가 수사력을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며 “관련 정보를 입수해 보고하는 정도의 차원에서 알아보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선주/김태호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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