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영 기자] 15년 전 넘치는 패기와 열정으로 ‘으쌰으쌰’를 외치던 소년들은 어느덧 서른 중반 나이에 접어들었다. 수줍음이 묻어 있던 뽀얗고 앳된 얼굴엔 거뭇한 수염자국이 내려앉았지만 공들여 깎지 않아도 섹시하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자리에서 자연스레 담배를 꺼내 무는 모습도, 무심한 척 서로를 괴롭히고 몰아가는 모습도 눈에 선한 듯 익숙하다.
10년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만든다던데 신화 여섯 남자만큼은 건드리지 못한 모양이다. 이제는 존재 자체만으로 ‘전설’이 돼 버린 이들은 타인의 침입도, 멤버의 낙오도 허락하지 않은 채 처음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각종 최초, 최고 타이틀을 거머쥐며 고유의 스타일을 고수해온 신화는 기존의 칼군무를 버리고 ‘보깅댄스’로 아이돌 댄스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겠다는 각오다. 런웨이의 모델을 연상케 하는 신화의 색다른 비주얼과 하이패션 포즈를 떠올리게 하는 6인6색 신세계 안무는 신화가 이번 앨범을 두고 감히 ‘역대 최고’라 칭했던 이유를 짐작케 했다.
최근 청담동 모처에서 기자와 만난 신화는 “기존 칼군무나 남성미를 어필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건 다른 아이돌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 서른 중반 남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섹시함을 무기로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자고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 북적북적 5월 가요계, 그래도 자신있는 이유
5월 가요계는 조용필, 싸이, 이효리를 필두로 2PM, 서인영, CL, 엠블랙, 포맨, 바이브 등 쟁쟁한 스타들이 힘을 겨룰 예정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풍성해진 가요계가 마냥 반갑겠지만 전설적인 선배, 쟁쟁한 동료, 화려한 후배들과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하는 신화 입장에선 보통 부담이 아니다.
특히 최고의 ‘맞수’로 지목되는 이효리는 선공개곡 ‘미스코리아’만으로 음원차트 올킬은 물론 작은 소식 하나까지 크게 다뤄질 만큼 최고의 이슈메이커가 된 상황. 하지만 신화는 “가요계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며 오히려 그 곳에 빨리 동참하고 싶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많은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선후배 가수들이 나오시고 그분들이 다 각기 다른 스타일로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효리가 초반에 잘 해줘서 저희에 대한 기대치도 함께 높아진 것 같지만 북적북적하고 훈훈한 분위기는 좋네요” (혜성)
신화는 그 어떤 아이돌도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30대 남성만이 가지는 중후한 섹시미를 주 무기로 삼았다. 섹시미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다 아이돌 최초로 보깅댄스에 도전하게 됐다. 보깅댄스란 1990년대 마돈나의 5집 ‘보그’의 인기와 더불어 전파된 춤으로 모델 포즈에서 따온 손동작을 이용해 리듬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창 짐승돌이었을 때 ‘벗는 것’으로 섹시미를 어필했다면 이젠 벗지 않아도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안무 시안을 계속 갈아엎다가 막판에 ‘보깅댄스’를 떠올리게 됐죠. 선과 각도를 연출하는 게 의외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서 서로 코치를 많이 해줬어요. 일단 6명 모두 선과 색깔이 다르니 6번을 보셔도 지루하진 않으실 거예요.” (민우)
타이틀곡으로 ‘This Love’가 선택된 이유도 ‘보깅댄스’와 가장 잘 어울려서다. 당초 신화는 흥겨운 도입부가 인상적인 ‘Scarface’를 유력 타이틀로 보고 안무를 완성시켰지만 기존 색깔과 구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결정을 내리게 됐다.
다만 이민우가 “‘T.O.P’보다 위엄 있는 곡이 나올 것 같다”며 자작곡 탄생을 예고한 것과는 달리 타인의 곡이 타이틀로 낙점된 것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귀찮아서도, 게을러서도 아니에요. 디렉팅을 보면서 멤버들의 분량, 파트 분배, 녹음까지 하려다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더라고요. 작업중이던 가사 마무리가 늦어질 정도로요. 콘서트에서 언급할 땐 진짜로 뭔가 나올 것 같았는데, 점차 욕심을 버리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 언급했던 음악은 솔로앨범이든 신화 앨범이든 다음엔 꼭 수록할 계획이에요.” (민우)
◆ ‘가요계 박혁거세’로 영원히…
처음 신화라는 이름을 받고 철없이 싫어하던 멤버들은 15년이 지난 뒤 이름처럼 전설이 됐다. 혈기 왕성한 20대부터 서른 중반에 이르기까지, 소속사가 달라도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신화 개인의 의리와 더불어 에릭의 희생과 리더십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릭은 “아이돌 리더의 표본”이라는 칭찬에 얼굴을 붉히더니 “리더라면 분위기도 잘 띄우고 말도 잘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이런 거라도 열심히 하자 생각했던 것”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개인이 잘 나갈 때 스스로 변치 않았던 것이 신화를 지속하게 해준 힘”이라고 모두를 칭찬한 그는 “너무 평탄해서 나태해질 때마다 사건 사고를 터뜨려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게 해줬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신화가 가진 진정성의 힘은 한순간 보여준다고 해서 표현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남으로써 증명되는 느낌이에요. 신화가 의리를 갖고 꾸준히 오래 활동하시는 걸 보고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실제로 자랑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피크타임 음료 광고인데요, 원래는 저만 하기로 돼 있었는데 제가 멤버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요청하니 흔쾌히 허락해 주시더라고요. 게다가 저에겐 다른 광고까지 따로 내주셨죠.” (에릭)
어려운 순간에도 신화의 존재를 위해 서로를 배려하며 달려온 신화였기에 데뷔 15주년도 감회가 남다르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팬 규모, 최장수 아이돌이라는 유일무이 닉네임도 뿌듯하지만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20주년, 25주년 지날 때마다 신화박물관, 신화공연장 건립 등 목표한 바를 천천히 이루며 영원히 신화로 남고 싶다는 게 멤버들의 생각이다.
“10년 전, 10년 후엔 뭐 하고 살 것 같냐는 질문에 아주 먼 미래라고 생각하고 ‘애아빠’ ‘카페 주인’ ‘안무가’ ‘트로트가수’ 별 얘길 다 했는데, 이젠 10년을 넘어 15년이 지났잖아요. 앞으로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에릭)
“어릴 땐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갈까’ 생각했는데 요즘은 너무 빨리 지나가요. 앞으로 더 빨리 지나갈 것 같아요. 그걸 알기에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고야 말테야!” (전진)
결혼해서 누군가의 남편, 한 아이의 아빠가 되더라도 신화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고 싶다는 게 신화의 공통된 바람이다. 신혜성은 “누가 먼저 결혼한다고 해도 파격적일 것 같지도 않다”며 “나중에 콘서트 할 때 앞줄에 아기들이 쪼르르 앉아 있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마 그때가 되면 신화에겐 ‘조상돌’이 아닌 ‘유부돌’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지 않을까?
“‘조상돌’ ‘원조 아이돌’이 지겹다고요? 사실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에요. 수식어가 필요 없죠. 하지만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주셔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는 ‘조상돌’도 좋아하거든요. 음...굳이 수식어가 필요하다면 ‘가요계의 박혁거세’ 어떤가요?” (사진제공: 신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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