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前총리 타계] 수출 주도 '압축 성장'이끌어…1970년대 '한강의 기적' 1등 공신

입력 2013-05-19 17:14   수정 2013-05-20 00:35

남덕우 前총리 타계 - 개발연대와 함께 한 삶

"빵과 자유 양립시키는 것은 시장경제뿐이다"
3~5공화국 경제 총괄…한국의 산업화 주도
공직 끝낸후 무협회장 맡아…무역센터 세워






‘운명이다. 할 수 없다.’

1969년 10월 남덕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납덩이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청와대로 향했다. 신임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준 박정희 대통령이 남 교수에게 다가왔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서강대 교수 시절 출간한 ‘가격론’을 읽은 뒤 박 전 대통령이 고인을 전격적으로 재무부 장관에 발탁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1982년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14년간의 공직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18일 별세한 남덕우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을 도와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냈다. 가용 자원을 수출 대기업에 몰아주면서 불균형을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수출주도형 성장모델 없이는 현재의 한국 경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한국무역협회 회장,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는 등 ‘영원한 현역’으로 불렸다.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평가단 회의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한 남 전 총리를 제24대 재무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는 내가 맡을 테니 경제장관들은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 달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고인은 1974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영전했다. 1979년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을 맡았다. 이 기간 사채 동결(1972년), 중화학공업 육성(1974년), 부가가치세 10% 도입(1976년) 등 굵직굵직한 경제정책들을 진두지휘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자 다음해 1월 ‘물가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를 내놓는 등 긴축 대책을 내놨지만 수출 업체들의 어려움을 들은 박 전 대통령이 “남 장관, 쥐어짜지만 말고 업계 사정을 좀 돌봐줘”라고 지시하자 한발 물러선 적도 있다.

경제 개발 달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그를 통해 마련됐다. 그는 “자신은 무조건적인 성장론자는 아니다”면서도 “빵과 자유를 양립시킬 수 있는 경제 체제는 자유시장경제밖에 없다”(2011년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며 시장경제의 우위를 줄곧 주장했다.

최장수 재무장관(4년11개월), 최장수 부총리(4년3개월)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후 1980년부터 1982년까지 국무총리를 맡은 뒤 공직을 떠났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고,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특히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가 2009년 발간한 서예집 ‘지암 남덕우 서집’ 첫 장에 나오는 논어 구절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삶의 지침이었다.

○영원한 현역 경제학자

은퇴 이후 ‘수출 확대와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힘썼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18~20대 무협 회장으로 재직하며 한국 무역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서울 삼성동 종합무역센터 건립을 주도, 코엑스 전시장을 만들고 한국무역정보통신을 설립했다. 고인은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바이어가 테헤란로에 방문하면 무역센터 빌딩에서 한국 업체를 만나고, 전시장에서 상품을 고르고, 현대백화점에서 선물을 사고,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잠을 자고, 공항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고인은 2005년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재단법인 한국선진화포럼을 설립해 경제 원로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이 재단은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목표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다. 작년 9월 대선을 앞두고 전직 경제부총리 12명과 함께 경제민주화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해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인은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10월 본지 창간 41주년 특별기고에서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부자를 배척하면 부자가 돼 큰일을 해보겠다는 모험과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가 정신을 꺾게 되고 경제·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서욱진/서정환/김대훈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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