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진정한 상생

입력 2013-05-20 17:39   수정 2013-05-20 23:21

승자들이 상생을 이야기하지만 함께사는 세상은 乙이 인정해야

은수미 <민주당 국회의원 hopesumi@na.go.kr>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의 독재국가 판엠은 매년 12개 식민지에서 각각 두 명의 소년소녀, 총 24명을 뽑아 헝거게임을 시킨다. 한 명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헝거게임의 모든 과정을 서바이벌 오락물로 치장해 전 식민지에 생중계하는 판엠의 ‘갑질’에 여동생 대신 지원한 한 소녀가 맞선다. 혼자 살아남으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함께 살기’를 선택한 소녀 ‘을’의 얼굴 위로 일부 기업의 불법파견에 맞서 싸우는 하도급노동자들의 얼굴이 겹치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진행하는가 하면 불법파견 판정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까지 내기도 한다. 돈 있고 시간 있는 슈퍼갑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헌법소원에 져도 그 덕분에 다른 소송이 보류되니 시간 끌어 파김치 만들 수 있고, 만약 이기면 비정규직법이 무력화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대기업의 불법파견 관행이 합법으로 바뀌는 길이 열리니 ‘슈퍼갑’의 상생이다. 나치가 유대인을 합법의 이름으로 아우슈비츠에 보낸 것처럼 비정규직법도 그렇게 하얀 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송전탑 위에 올라 농성을 이어가는 것이다.

‘함께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또 있다. 2주 전쯤 찾아온 종합유선방송 태광티브로드 하도급 노동자들이 대한문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원청정규직, 비정규직, 하도급노동자가 함께 밝힌 촛불에 쌍용차 정리해고자, 콜센터 노동자가 함께했다.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동자 500여명은 “말로만 했던 비정규직 투쟁이 부끄럽다”며 어깨를 걸었다. 배상면주가 이모 점장 추모기자회견에는 남양유업 대리점주협의회, 편의점 가맹점주모임, 문구점주모임 등이 함께했다. 5·18 맞이 광주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어깨를 건 사람들이 있다.

가끔 힘센 자들이 상생협력을 외칠 때가 있다. 그러나 을이 살아야, 그리고 을이 인정해야 상생이다. ‘을생상생’만으로 승자독식의 규칙이 당장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새벽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나 모두를 부르는, 모두를 부르나 꼭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지 않던가.

은수미 <민주당 국회의원 hopesumi@n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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