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08> 신석기혁명이 인류의 소득수준을 낮추었다?

입력 2013-05-21 10:49  


신석기혁명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수준은 BC 10만년 전의 고대 인류에 비해 획기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분명 신석기혁명은 생산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거대한 사건 중 하나다. 수렵과 채집활동으로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던 인류가 농업을 시작으로 정착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착생활은 부족을 형성했고, 부족의 형성은 각종 문화를 만들어내, 기존의 어떠한 사건보다도 사회문화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토기를 이용한 저장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미래의 흉작에 대비할 수 있어 이전 시대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수렵채집 활동을 하던 구석기 시대에 비해 형편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신석기 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농업이다. 농업의 경우 생산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토지지만, 문제는 농사가 가능한 비옥한 땅이 매우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땅을 개간하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고, 화학비료와 같이 인위적으로 토지의 비옥도를 높여줄 수 있는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농업의 핵심요소인 토지가 생산량 증가에 크게 기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확체감의 법칙'

당시의 상황에서 생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농사에 투입되는 인원을 늘리는 것이었다. 노동 투입이 많을수록 한정된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총 산출량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체 생산량이 아닌 1인당 생산량이다. 경작지와 비옥도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노동자의 공급이 증가할수록 토지의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아져 총 산출량은 증가하지만,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은 감소하게 된다. 즉, 생산에 투입된 한 요소가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다른 요소의 투입량이 증가할수록 단위당 산출량이 줄어드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수확체감의 개념을 사회 전체에 적용해 세상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려고 했던 경제학자가 바로 맬서스다. 맬서스는 ‘인구론’을 통해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출생률이 증가하고, 반대로 사망률은 감소한다고 봤다. 또한 소득수준은 인구수가 증가함에 따라 감소된다고 주장했다. 높아진 소득수준으로 출생률이 상승하고, 사망률은 감소해 인구가 증가되고, 증가된 인구는 다시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사망률을 증가시키게 되는 순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사망률과 출생률이 동일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결과적으로 실질소득은 전에 비해 낮아진 반면 인구는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경제성장은 인구 증가에만 기여해 생활수준은 최저생계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낮아진 신석기 시대 생활수준

특히 맬서스는 식량에 관심을 뒀다. 식량공급은 작은 폭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이를 소비하는 인구는 큰 폭으로 증가해 결과적으로 인류는 궁핍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산아제한을 제안했다. 출생률을 낮추고, 사망률을 높여 인구가 줄어야만 전반적인 실질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맬서스의 시각에서 바라본 신석기혁명은 결코 구석기 시대에 비해 나은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흉작에 대비해 식량을 비축한 것은 출생률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사망률을 낮추는 역할을 해 생활수준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는 수렵채집인과 자급농업인의 시간 사용에 관한 연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수렵채집경제 사회를 살던 베네수엘라의 하이위 부족은 하루평균 1750㎉를 소비했지만, 이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두 시간이 채 못 됐다. 그러면서도 상당한 양의 수렵채집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조사가능한 부족의 노동시간을 살펴본 결과 일일 노동시간은 약 5.9시간으로 1년으로 치면 고작 2150시간이었다. 이는 정착농경 사회의 노동시간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신석기혁명 이후의 정착농경 사회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의 노동으로도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맬서스의 논리는 신석기혁명부터 산업혁명 직전인 1800년 이전의 인류사회를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해낸다. 이 시기는 일반 상식에 어긋나는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전쟁, 질병, 낮은 위생수준 등 사망률을 높이는 요인들이 오히려 물질생활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반면 의학의 발달, 개인위생 수준의 향상, 풍년, 평화와 질서와 같이 사망률을 낮추는 요인들은 물질생활 수준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놀라운 점은 실제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어 급격한 사망률을 기록한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사회의 생활수준이 높아진 모습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는 점이다.

다행히 세상은 맬서스의 논리대로 계속되지 않았다. 네덜란드와 영국을 중심으로 맬서스의 덫에서 벗어나는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도시화였다. 도시화된 사회에서는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보다 적은 노동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계획에 변화가 생겨났다. 17~19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상거래 활동은 도시화를 부추겼고, 이로 인해 출산율은 소득수준 증가와 무관하게 감소했다. 한편, 높은 도시화율과 맞물려 낮은 위생상태도 맬서스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데 일조했다. 산업화 이전 유럽의 경우 인분의 처리에 대해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위생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낮은 위생 관념은 각종 질환 및 전염병을 야기했고, 소득수준 증가에도 사망률이 낮아지지 않고 높아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업화 이전의 도시화, 위생 관념의 요인들과 무관하게 산업혁명 이후에는 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인구증가의 속도를 넘어설 만큼 증가하였다. 그 결과 인류가 영원히 최저소득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맬서스의 주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간사회가 자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 경제를 자연 경제와 분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멜서스가 오늘날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맬서스의 이론은 ‘성장의 한계(The Limit to Growth)’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식량문제에서 에너지, 환경 문제로 옮겨가 동일한 주장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는 시장 중심의 경제체제로, 맬서스의 이론이 발표 당시만큼의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구론이 발표된 지 200년이 넘게 지난 현대의 시장경제체제의 한편에서도 여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맬서스가 가진 통찰력이 어느 정도로 뛰어났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김동영 KDI 연구원(kimdy@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수확체감의 법칙

어떤 생산요소의 투입을 고정시키고 다른 생산요소의 투입을 증가시킬 경우 산출량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투입량이 일정수준을 넘게 되면 산출량의 중가율이 점차적으로 감소하게 되는 현상

▨ 맬서스의 인구론
수확체감의 법칙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하여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인구과잉, 식량부족 문제가 발생하고 이러한 문제가 실질임금을 최저생계비수준으로 감소시킨다고 주장한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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