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해준다고 속이고 7500대 개통 팔아넘겨
기계값·연체료 이통사에 "받아낼 방법 없어" 울상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한 휴대폰) 범죄가 늘어나면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범죄에 악용된 대포폰 관련 비용을 통신 3사가 그대로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와 관련 통계에 따르면 현재 통신 3사가 짊어지고 있는 대포폰 관련 연체요금은 약 300억원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지 않은 피해금이지만 대포폰을 개통하는 범인들의 수법이 더욱 치밀해지고 있어 통신사에서 이를 적발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대포폰 27만여대, 통신사 300억원 피해
경기 고양경찰서는 최근 대출을 해줄 것처럼 속여 휴대폰 7000여대를 개통한 뒤 대포폰으로 팔아넘긴 혐의(사기 등)로 정모씨(29) 등 1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대출을 받으려는 3980명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휴대폰 7512대를 개통, 대당 40만~50만원을 받고 장물업자에게 대포폰을 팔아넘겼다.
지난달에는 유령회사를 차려 법인 명의의 대포폰을 개설한 기업형 조직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법인 명의의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개설해 국내외에 판매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로 정모씨(30) 등 14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유령법인의 명의로 대포폰 360개를 만들어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이처럼 대포폰 유통이 기승을 부리면서 대포폰의 연체 통신요금 피해는 통신 3사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현재 미래창조과학부로 업무 이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통신 3사가 이동통신 가입자로부터 받지 못한 통신요금은 모두 1192억원, 연체자 숫자는 이동통신 사용자의 1.9%에 달하는 100만8000명이다. 여기에는 대포폰 관련 연체료도 포함돼 있다. 현재 검찰이 추정하는 대포폰 숫자는 27만여대. 이는 전체 연체자 숫자에 약 30%에 해당한다. 이를 기준으로 통신사의 연체금을 추정해보면 대포폰 피해액은 300억원에 달한다. 통신업체 관계자도 “대포폰 피해액은 연체대금에 포함돼 있어 정확한 수치를 집계하기 쉽지 않지만 통신사 피해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며 “피해금은 수백억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휴대폰 대리점 대표는 “대리점별로 매달 100만~150만원 정도를 대포폰 관련 미납금액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포폰 개통 갈수록 치밀, 적발 쉽지 않아
대포폰 유통이 늘어나지만 통신사 자체적으로 개통을 막기는 쉽지 않다. 경찰에 따르면 대포폰 명의는 대부분 노숙자 이름을 활용한다. 노숙자들은 자신의 명의를 5만원 정도에 팔고 대포업자는 이들과 동행해 통신업체 창구에서 휴대폰을 개설한다. 직접 휴대폰을 개설하러 오기 때문에 통신업체는 이들이 대포폰 업자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유령법인을 세우고 대포폰을 개통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인 명의로 휴대폰 개설할 때 요구하는 사항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세계약서 등을 증거로 제시할 경우 휴대폰 대리점에서는 유령법인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휴대폰 개통 이후에도 대포폰인지 정상폰인지 바로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통신사는 보통 2개월 이상 요금납부를 미루면 연체로 본다. 대포폰을 활용하는 범인들은 이 점을 노려 2개월 동안 휴대폰을 사용하고는 버리거나 중국으로 되판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이 기간 동안의 사용금액과 기계 값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통신 3사의 정책 등을 관할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역시 이런 통신사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최근 통신 3사와 함께 소득 취약계층에 연체요금을 최대 5개월로 나눠 낼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포폰 연체액의 경우는 제도적으로 보완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대포폰은 통신사 연체문제도 있지만 제2의 범죄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노숙자가 많은 서울역 등에서 예방활동을 펼치는 등 자체적 노력도 하고 있고, 경찰에게 대포폰 근절을 위한 수사 요청과 협력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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